통일시대 새로운 이름을 준비하자

이제 우리의 이름을 고민해 볼 때입니다.

우리가 머지 않은 미래에 통일한 이후에도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적절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초 한(韓)이란 이름은 한반도 남쪽에 있는 부족들의 통칭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동안 살아왔던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아우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백두산 일대는 아예 포함되지도 않는 이름입니다.

대한이란 이름은 조선이 망해가는 시기 말미에 역사적 틈바구니에서 엉겁결에 가져다 붙인 이름입니다.

이를 독립운동가들이 그대로 인용했으며 광복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의 이름을 채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크게 봐도 한반도 남부에 불과한 이름을 통일 이후 국가에도 그대로 써야 하는지는 장기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해외에서 우리를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600년 전에 멸망한 나라의 이름을 지금도 그대로 쓰는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우리 국가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의 현재 국가적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헌법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물론 여러가지 가치들이 열거돼 있지만 이것이 국시다라고 생각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차라지 지금의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이후 아직까지도 반공이 국시입니다.

반공이라 함은 말 그대로 공산당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누군가를 반대하는 것을 나의 가치로 삼을 것입니까.

이제는 정말로 우리의 국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의 국시로 “홍익인간”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의 태초의 건국 이념이며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이를 그냥 과거의 유산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루고 지향해 나갈 가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나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내세우고 있는 ‘자유’와 ‘평등’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간 미래 지향적인 가치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홍익인간의 정신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하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먼저 하나씩 이뤄감으로서 세계 가치를 선도하는 국가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충남 1박2일 여행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라 멀리는 못 가고 충남 일대를 돌았습니다.

세종시
우여곡절끝에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가 첫 코스였습니다.

자연 발생적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 설계된 도시는 어떤 모습인지 보고싶었습니다.

세종시는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도시까지 이어진 도로는 넓게 조성되어 좋았지만 아직은 교통량이 적어 황량했습니다. 도시에 들어서면서는 여기저기 아직도 공사중인 아파트들이 보였고 공사차량도 많이 오갔습니다.

길 바닥에도 흙먼지가 쌓여 있어 지저분했습니다.

하지만 시내로 접어들자 넓직하게 자리잡은 호수가 순식간에 어수선한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호수는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고 지나치게 인공미가 가미돼 있었습니다.

여러 정부 청사 건물들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었고 유기적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만화에서 보던 미래도시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강 건너 상가 권역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었습니다.

갑사
계룡산 깊숙히 자리잡은 갑사는 생각보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절집이었습니다. 대부분 주요 건물들이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으로 아담했습니다.

아직도 절 경내에는 사람이 손이 많이 타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절 입구에 자리잡은 지어지다 만 콘크리트 건물이었습니다.

애초에 무슨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지어지지 말았어야 할 건물이었습니다.

논산
논산은 시내 중심가를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곳일 수밖에 없는 논산은 저에게도 그리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볼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논산 시내는 비교적 크고 번화했습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몇기의 횡혈식석실분이 있었습니다. 4천왕을 그린 벽화고분도 있었습니다. 규모는 고대 왕릉이라고 보기엔 많이 작았습니다. 신라의 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고 그저 요즈음의 무덤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하는게 맞을 겁니다.

정림사지 5층탑
정림사지탑은 수년 전에도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 여름의 무더위로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휴관일이라며 볼 수 없답니다. 물론 휴관일에 공무원들이 쉬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마당 한가운데 있는 것을 자기들이 쉰다고 멀리서 온 사람들까지 못보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울타리 건너에서 깨끔발을 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청양
방기옥고택(향원재)
숙소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맛을 즐길수 있는 방기옥 고택을 선택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예약도 없이  찾아온 젊은이에 많이 놀랐습니다.

4인가족 1박 대실료가 비수기 주중가격으로 10만원.

우리가 잔 방은 사랑채였는데 작은 방 두칸이 연결된 방이었습니다. 바로 옆으로 사랑마루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혹시 아궁이를 때서 난방을 하는 것이 아닌지 기대했는데 전기보일러를 이용한 난방이었습니다. 스위치를 올리자 채 10분이 안되어 뜻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화장실과 씽크대는 다른 칸에 따로 마련돼 있었지만 전기온수기를 이용해 따뜻한 물이나왔고 가스렌지까지 설치돼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고택의 느낌은 잠을 한참 자다가 절감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실내공기가 전혀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불을 어깨 위까지 아무리 덮어도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방바닥이 아무리 뜨거워도 추울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다 말고 옛날 고택들은 왜 이렇게 지었을까 하는 궁금함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름에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들도록 설계됐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보온이 잘되도록 무얼 어떻게 했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시골에서 살았던 초가집은 벽도 두꺼웠고 안방은 대체로 광이나 부엌으로 둘러싸여 나름 우풍에 대한 대비도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반가는 난방에 관한 한은 영 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아마도 폼잡느라 그랬을 것라는 데 생각이 이르니 그 바람에 아랫것들만 또 얼마나 볶아댔겠나 싶습니다.

청양 읍내 그리고 저녁
저녁은 청양읍내로 나와 사먹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간 집은 정육점과 고깃집을 겸한 곳이었는데 모둠 쇠고기가 1인분에 17000원....
싼 맛에 선택했지만 맛은 그대로 먹을만 했습니다. 

청양 읍내는 말 그대로 읍내... 꽤 넓은 사거리에도 신호등이 없는게 신기했습니다. 충남 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그러했는데 아마도 느긋한 충청도 양반들 성격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음 날에는 12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까닭에 느긋하게 구경도 못하고 서둘러 올라와야 했습니다.

다만....
청양에서 보령으로 가는 길은 아마도 바위로 유명한 곳인지 커다란 바위들을 마당 한가득 쌓아 놓고 글씨며 문양이며 새기는 모습이 이채로왔습니다.

노인들의 천국.... 고향 판포를 소개합니다.

  
얼마 전 고향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제 고향 제주의 판포는 정말 노인들의 천국이었습니다.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고향 어르신들이 모두 입을 모아 노인들에게는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칭찬하십니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몇년 전 세워진 노인복지재단 덕분입니다.

재단 건립자는 판포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교포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객지생활하면서 피와 땀으로 모은 돈을 고향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쓰시겠다고 고향에 재단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 분이 그런 재단을 설립한 이면에 또 다른 개인적, 경제적 목적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동네 노인들은 엄청난 혜택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단에서는 우선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인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을 고용했습니다. 이들은 매일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보살핍니다.

거동이 힘든 분들은 청소를 해 드리고 음식을 해 드리고 빨래나 설겆이를 돕기도 합니다. 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웃 마을의 목욕탕으로 모셔서 목욕을 시켜 드립니다.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은 마을회관으로 모여서 같이 음식도 해 먹고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 노래도 부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합니다.

나아가 주기적으로 어른들을 모셔서 도내 여러 곳으로 여행을 다니시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를... 노인들에게는 보살핌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재단 설립자는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셔서 얼굴도 잘 잘 비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향 떠나서 자수성가하고 부자가 된 분들은 아마 많을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아마도 많은 분들이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픈 마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를 벤치마킹한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입니다.

정작 본인은 언론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으셔서 방송이나 신문에 조차 한 번 소개된 적이 없지만.... 이런 분들이야말로 세상에 많이 소개돼서 많은 분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예인들.... 제발 호칭 가지고 아웅다웅은 그만.....










어쩌다 인터뷰 형식의 예능을 보다 보면 간혹 신변잡기 이야기로 연예인들 사이의 호칭이 소재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몇 번들 들어 보아도 내용은 누구는 누구에게 반말을 하는데 누구는 존대를 하고 사실 나이는 누가 더 많은데....형이 동생에게 존대를 하고... 이런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은 실상 생활에서 어떻게 하세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아마도 수년 전만 해도 3월을 기준으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때문에 학창시절 친구들과 실재 나이와는 1년 정도(심하면 2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여기에다가 재수, 삼수까지 곁들이면 호칭은 거의 삼각함수 수준의 난이도를 갖게 됩니다.

제가 바로 이른둥이(2월생 그것도 음력으로..... 양력으로 치면 3월이 돼서 1년 후배들과 학교에 다녔어야 하는...)인데다가 3수까지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동창생들과 자연스럽게 친구로 지냈고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삼수를 거쳐 대학에 가서 한번의  고개를 넘습니다. 우선 선배들과..... 남든은 어떤지 몰라도 제 경우에는.... 삼수고 뭐고 무조건 선배들에게 존대를 써라...는게 선배들의 요구였습니다.

또 동기들도 삼수생까지는 존칭을 쓰지 말자고 자기들끼리 일방적으로 정하더군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따랐습니다.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까...

...
...
...
...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봅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예능 소재로 올라오는 것도 그렇고 언젠가는 호칭 문제 때문에 큰 싸움이 있었다고 연예면을 넘어 사회면까지 큼직하게 장식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거듭...
여러분은 어찌 지내십니까?

사실 사회에 나오면 모두 다 성인이고 서로 다 존칭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무리 손 아래라 하더라도 “~해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하게”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상황에 맞추어 딱 맞는 표현이 어렵겠지만 서로간에 존중이라는 정신만 갖춘다면 그 표현은 굳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된 친구 사이라면 꼭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농담도 하고 욕도 할 수 있는메 친구사이이니까요... 아추 친한 사이라면 호칭 따위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문제는 어느 정도 애매한 친분이 쌓였을 때입니다. 그러면 꼭 한 줄 세우기가 문제가 됩니다.

누구는 누구에게 형이라고 하는데 그 친구에게는 반말을 하거나 하대를 하거나....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 어색하다는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남의 호칭을 굳이 제삼자가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요? 호칭은 그저 개인적인 사인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굳이 동생이 내 친구에게 반말을 하든 존대를 하든 내가 나서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자리라면 서로 깎듯하게 존칭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보기엔  문제가 되는 연예인들 천박함입니다.

그런 천박함을 방송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보이는 또 그 천박함입니다.

사실 사회에서는 호칭이 전혀 문제가 아니지는 않지만 그렇게 대단한 문제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연예인들의 천박한 사회성이 사회의 수준까지 천박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제는 제발 어떤 예능이든 라디오는 방송에서 더이상 호칭가지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