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그녀는 무슨 꿈을 꿨을까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가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인가 하던 해였는데 국사학과를 다녔던 나는 선배들과 함께 이를 기념해 전국에 있는 관련 비석들 탁본을 떠서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은 광주에서 한 개의 탁본을 뜨고 저녁 늦게가 돼서야 여수에 도착했습니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이 몇 군데에 있는데 이 날은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공원에 세워져 있는 타루비 탁본을 떠야 했습니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앞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타루비는 이곳에서 바다를 보면 나라를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생각에 눈물을 뿌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타루비 탁본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작은 비석 탁본 하나 뜨는데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날이 어두워져 일은 더욱 오래 걸렸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비석의 탁본을 뜨기 위해서는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는 공원 관리소에 가서 학과장 도장이 찍혀 있는 협조 요청서를 제출하고 탁본을 떴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타루비가 서 있는 공원의 관리소는 따로 없었고 공원 옆 허름한 건물에 사시는 분들이 관리를 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듣고 찾아갔습니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20대 중후반의 키 크고 늘씬한 아가씨가 나왔다. 흠칫 놀랐습니다. 보통 연세 지긋한 분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젊고 예쁘기까지 한 아가씨가 나온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상 외로 흔쾌히 탁본을 허락해줬습니다. 그리고 탁본을 뜨는데 필요한 물도 얼마든지 받아갈 수 있게 협조해 줬습니다.


어스름 녘에 시작한 탁본은 해가 져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플레시 불빛을 비춰가며 솜 뭉치를 두들겨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여수 사투리 억양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표준어 말이 더 친근감 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울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네예. 이곳 지리도 어두을 텐데 어떻게 잘도 찾아 오셨네요."
"아니 그냥 지도 보고......"
"괜찮으시다면 여수 역까지 바래 드리고 기차 시간까지 여유 있으면 간단하게 맥주라도 사 드릴께요."


헉! 예쁜 아가씨가 길을 바래다 주고 맥주까지 사주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손은 바빠지고 허둥지둥 댔습니다. 탁본이 잘 되거나 말거나 그런 것이 신경 쓰일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모르고 탁본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여수역으로 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막차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지도 않고 그녀를 따라 역 앞에 있는 호프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야 우리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이름은 혜숙. 나이는 26.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좀 벌다가 지금은 대학에 갈려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벌써 한 번 시험을 봤는데 서울대에 원서를 넣었다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얘기로 끝없이 떠들었습니다. 밤이 깊어 호프집 영업이 끝나자 쫒겨난 우리는 다시 여수역 앞 광장에 나와 맥주 파티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곤 한 두 명씩 그대로 골아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여수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남은 누군가가 집까지 바래다 주고 왔다고 했습니다. 분명 어제 겪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꿈만 같아 우리 모두 어리둥절 하기만 했습니다.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건 서울서였습니다. 그녀가 학교로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왔다는 말에 얼른 학회실로 가 보니 그녀가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이 밥만 먹고 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서로 편지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녀의 편지는 참 어려운 철학적 내용들이 많았고 저는 삼수 하면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개똥철학을 읊어댔습니다. 너무 멀리 있었던 우리는 만나기는 힘들었고 편지로만 이어가던 연락은 점차 뜸해졌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인연은 끝나는 듯 했습니다. 


군대 말년. 세상 소식이 무척 그리운 때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카드를 보내기로 맘 먹었습니다. 카드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이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라고만 쓰고 멋있게 사인을 넣고 무려 십여명에게 똑같이 보냈습니다.  신참이던 전 해 크리스마스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수 명의 친구에게 보냈는데 답장이 하나도 없어 무척 마음이 상했었거든요. 


그런데 꽤 여러 명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녀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 짧은 카드에 대한 답장으로 자그마치 5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는 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곤 또 몇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제대할 무렵 그녀는 꼭 한 번 여수에 들러 주면 맛있는 것도 사주게 시내 구경도 시켜 주겠다며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ㅋㅋ


군 제대 후 고향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여수에 들르기로 맘 먹었습니다. 여수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여수에서 놀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 여비도 아낄 수 있고 그녀도 만날 수 있고 일석 이조였습니다.


그녀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진 않았습니다. 시내 모처에서 만나 같이 차를 한 잔 하고 또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사이 그 녀는 여러 차례 대학 문을 두르렸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입시 제도가 바뀌어 공부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지금은 포기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남자를 만나 사귀고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저녁을 먹고 이어 맥주를 마셨습니다.


천사같은 그녀의 친절함은 여전했습니다. 늦게까지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혼자 여관방에 재우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며 같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실 맥주 몇 병과 화투를 사 들고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고스톱은 칠 줄 모른대서 손목 때리기 민화투를 쳤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기면 점에 한 대. 그녀가 이기면 점에 두 대.


청춘 남녀가 여관방에서 치는 이 불공평한 화투가 내게 즐거울 리 하나도 없습니다. 얼른 어떻게든 끝내고 불을 끄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그동안 맞은 손 목이 벌겋게 부어오를 지경입니다.


"졸려서 더 있상 못 치겠다. 그만 자자"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치자."
"싫다. 먼 길 온 데다 술까지 마셔서 피곤해. 그만 하자."
"그럼 먼저 씻고 와."
"아냐. 누나가 먼저 씼어."


그녀가 씼는 사이 온갖 상상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머리 속은 온통 하얗기만 하고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화장만 지우고 간단하게 씻은 후 나왔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두르고 나올 것이라는 상상은 제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부랴부랴 대충 씼고 나왔습니다. 그 사이 그녀는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누었습니다. 그리고 덮는 이불은 바닥에 있었습니다.


"너는 거기서 자."


"헉!"


이건 어떤 시나리오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같이 씩씩하게 여관까지 들어와 놓고 '거기서 자'라니......


하지만 그 말은 너무나도 단호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차친구가 있다는 말도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여관 바닥에 누었습니다. 그 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였는데 난방을 안 해 침대 위는 괜찮았지만 바닥은 차가웠습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니 맥주로 찬 배가 부글거렸습니다.


화장실을 두어 번 들락거렸습니다.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빙충이 같았고 그녀가 너무 야속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기에도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침대 옆에 서서 자는 그녀를 내려대 보았습니다. 


"어! 왜 안자." 
눈을 감고 있어도 화장실 들락거리는 소리에 깬 것인지 내려다 보는 눈빛을 느꼈는지 그녀가 눈을 뜨고 물었습니다.


"잠이 안 와."
"왜?"


"바닥이 너무 차. 설사 했어."
"그래도 안돼. 그냥 자."


"싫어. 차라리 이렇게 서 있을래."
"그래라 그럼."


그러기를 십여분. 


"침대 위에 누워. 대신 내 몸에 손 끝 하나 대면 안 된다."
"알았어."


그녀는 그러고 쌔근히 잠 들었습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아마도 열 번은 넘게 처음부터 끝까지 되뇌었을 것입니다. 


그 깊은 산에서 길을 잃은 그녀를 말 없이 지켜준 그 순정이 조금 이해가 되는듯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나기의 소년이 들었던 '바보, 바보'하는 소리를 나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머리 속은 무척 복잡했습니다.


다음 날 그녀와 함께 돌산대교에 놀러 갔지만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 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습니다. 대학에 복학한 뒤 나도 얼마 오래지 않아 여자 친구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지금도 문득, 그날밤 그녀는 무슨 꿈을 꿨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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