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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먹는 전구 구입 및 사용기 BN-105C


연기먹는 전구를 써 보셨어요..?

저는 가게에 설치를 하면서 1개를 추가로 구매해 집에다 달았습니다.

매일 폐렴을 달고 사는 큰아들, 비염으로 늘 숨막혀 하는 작은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아래는 블루앤 본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한 내용입니다.


  • 블루앤 본사 문의  042-861-6999
  • 공기중으로 음이온이 방출돼 나와 사방으로 확산된다.(그 범위가 3평정도)
  • 기존 음이온 공기 청정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어려운 내용 잘 이해가 안 됨)
  • 음이온은 질량이 없어서(마치 전기처럼) 공기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빛은 조명일 뿐... 공기정화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때문에 큰것(BN-108)과 작은 것(105)은 밝기 차이일 뿐 기능적 차이는 없다
  • 기준 평수(3평당 1개) 이상으로 충분히 설치하면 다른 환기시설이 없어도 될 정도로 효과가 있다.
  • 흑화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닦아줘야 한다.

제가 집에 설치한 것은 BN-105C입니다. 거게에 콘센트에 꽂아 쓰는 소켓을 같이 구매했습니다.

LED는 9개가 붙어 있고 색깔은 쿨화이트입니다.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크지도 않은 집인데 주방에서 하는 요리 냄새가 등이 설치돼 있는 거실에서는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그 냄새로 유명한 고등어 구이를 했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뭔가 고기요리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중에서야 고등어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냄새는 요리가 끝날 때까지도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 녀석이 똥을 싸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냄새 이외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건강이 하루 아침에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먼지가 사라지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당구장에 설치한 바로는 매우 효과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혹시 아파트 위 아래층 사이에 담배 연기로 갈등이 있는 집이 있다면 윗 집에 이 전등 하나 사 드리면 싹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구의 밝기는 
취침등으로 쓰기엔 너무 밝고 조명등으로 쓰기엔 너무 어둡습니다.

저는 거실에 24시간 켜놓고 싶은데 이 어중간한 밝기가 제일 큰 고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낮에는 거실 벽 위에 있는 에어콘용 콘센트에 꽂아 쓰고 잘 때는(온 식구가 거실에서 잠) 이 등을 뽑아 화장실 앞에 있는 콘센트에 꽂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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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그녀는 무슨 꿈을 꿨을까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가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인가 하던 해였는데 국사학과를 다녔던 나는 선배들과 함께 이를 기념해 전국에 있는 관련 비석들 탁본을 떠서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그 날은 광주에서 한 개의 탁본을 뜨고 저녁 늦게가 돼서야 여수에 도착했습니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이 몇 군데에 있는데 이 날은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공원에 세워져 있는 타루비 탁본을 떠야 했습니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앞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타루비는 이곳에서 바다를 보면 나라를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생각에 눈물을 뿌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타루비 탁본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작은 비석 탁본 하나 뜨는데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날이 어두워져 일은 더욱 오래 걸렸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비석의 탁본을 뜨기 위해서는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는 공원 관리소에 가서 학과장 도장이 찍혀 있는 협조 요청서를 제출하고 탁본을 떴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타루비가 서 있는 공원의 관리소는 따로 없었고 공원 옆 허름한 건물에 사시는 분들이 관리를 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듣고 찾아갔습니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20대 중후반의 키 크고 늘씬한 아가씨가 나왔다. 흠칫 놀랐습니다. 보통 연세 지긋한 분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젊고 예쁘기까지 한 아가씨가 나온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상 외로 흔쾌히 탁본을 허락해줬습니다. 그리고 탁본을 뜨는데 필요한 물도 얼마든지 받아갈 수 있게 협조해 줬습니다.


어스름 녘에 시작한 탁본은 해가 져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플레시 불빛을 비춰가며 솜 뭉치를 두들겨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여수 사투리 억양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표준어 말이 더 친근감 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울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네예. 이곳 지리도 어두을 텐데 어떻게 잘도 찾아 오셨네요."
"아니 그냥 지도 보고......"
"괜찮으시다면 여수 역까지 바래 드리고 기차 시간까지 여유 있으면 간단하게 맥주라도 사 드릴께요."


헉! 예쁜 아가씨가 길을 바래다 주고 맥주까지 사주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손은 바빠지고 허둥지둥 댔습니다. 탁본이 잘 되거나 말거나 그런 것이 신경 쓰일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모르고 탁본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여수역으로 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막차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지도 않고 그녀를 따라 역 앞에 있는 호프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야 우리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이름은 혜숙. 나이는 26.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좀 벌다가 지금은 대학에 갈려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벌써 한 번 시험을 봤는데 서울대에 원서를 넣었다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얘기로 끝없이 떠들었습니다. 밤이 깊어 호프집 영업이 끝나자 쫒겨난 우리는 다시 여수역 앞 광장에 나와 맥주 파티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곤 한 두 명씩 그대로 골아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여수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남은 누군가가 집까지 바래다 주고 왔다고 했습니다. 분명 어제 겪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꿈만 같아 우리 모두 어리둥절 하기만 했습니다.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건 서울서였습니다. 그녀가 학교로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왔다는 말에 얼른 학회실로 가 보니 그녀가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이 밥만 먹고 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서로 편지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녀의 편지는 참 어려운 철학적 내용들이 많았고 저는 삼수 하면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개똥철학을 읊어댔습니다. 너무 멀리 있었던 우리는 만나기는 힘들었고 편지로만 이어가던 연락은 점차 뜸해졌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인연은 끝나는 듯 했습니다. 


군대 말년. 세상 소식이 무척 그리운 때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카드를 보내기로 맘 먹었습니다. 카드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이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라고만 쓰고 멋있게 사인을 넣고 무려 십여명에게 똑같이 보냈습니다.  신참이던 전 해 크리스마스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수 명의 친구에게 보냈는데 답장이 하나도 없어 무척 마음이 상했었거든요. 


그런데 꽤 여러 명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녀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 짧은 카드에 대한 답장으로 자그마치 5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는 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곤 또 몇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제대할 무렵 그녀는 꼭 한 번 여수에 들러 주면 맛있는 것도 사주게 시내 구경도 시켜 주겠다며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ㅋㅋ


군 제대 후 고향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여수에 들르기로 맘 먹었습니다. 여수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여수에서 놀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 여비도 아낄 수 있고 그녀도 만날 수 있고 일석 이조였습니다.


그녀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진 않았습니다. 시내 모처에서 만나 같이 차를 한 잔 하고 또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사이 그 녀는 여러 차례 대학 문을 두르렸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입시 제도가 바뀌어 공부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지금은 포기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남자를 만나 사귀고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저녁을 먹고 이어 맥주를 마셨습니다.


천사같은 그녀의 친절함은 여전했습니다. 늦게까지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혼자 여관방에 재우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며 같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실 맥주 몇 병과 화투를 사 들고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고스톱은 칠 줄 모른대서 손목 때리기 민화투를 쳤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기면 점에 한 대. 그녀가 이기면 점에 두 대.


청춘 남녀가 여관방에서 치는 이 불공평한 화투가 내게 즐거울 리 하나도 없습니다. 얼른 어떻게든 끝내고 불을 끄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그동안 맞은 손 목이 벌겋게 부어오를 지경입니다.


"졸려서 더 있상 못 치겠다. 그만 자자"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치자."
"싫다. 먼 길 온 데다 술까지 마셔서 피곤해. 그만 하자."
"그럼 먼저 씻고 와."
"아냐. 누나가 먼저 씼어."


그녀가 씼는 사이 온갖 상상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머리 속은 온통 하얗기만 하고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화장만 지우고 간단하게 씻은 후 나왔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두르고 나올 것이라는 상상은 제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부랴부랴 대충 씼고 나왔습니다. 그 사이 그녀는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누었습니다. 그리고 덮는 이불은 바닥에 있었습니다.


"너는 거기서 자."


"헉!"


이건 어떤 시나리오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같이 씩씩하게 여관까지 들어와 놓고 '거기서 자'라니......


하지만 그 말은 너무나도 단호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차친구가 있다는 말도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여관 바닥에 누었습니다. 그 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였는데 난방을 안 해 침대 위는 괜찮았지만 바닥은 차가웠습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니 맥주로 찬 배가 부글거렸습니다.


화장실을 두어 번 들락거렸습니다.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빙충이 같았고 그녀가 너무 야속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기에도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침대 옆에 서서 자는 그녀를 내려대 보았습니다. 


"어! 왜 안자." 
눈을 감고 있어도 화장실 들락거리는 소리에 깬 것인지 내려다 보는 눈빛을 느꼈는지 그녀가 눈을 뜨고 물었습니다.


"잠이 안 와."
"왜?"


"바닥이 너무 차. 설사 했어."
"그래도 안돼. 그냥 자."


"싫어. 차라리 이렇게 서 있을래."
"그래라 그럼."


그러기를 십여분. 


"침대 위에 누워. 대신 내 몸에 손 끝 하나 대면 안 된다."
"알았어."


그녀는 그러고 쌔근히 잠 들었습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아마도 열 번은 넘게 처음부터 끝까지 되뇌었을 것입니다. 


그 깊은 산에서 길을 잃은 그녀를 말 없이 지켜준 그 순정이 조금 이해가 되는듯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나기의 소년이 들었던 '바보, 바보'하는 소리를 나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머리 속은 무척 복잡했습니다.


다음 날 그녀와 함께 돌산대교에 놀러 갔지만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 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습니다. 대학에 복학한 뒤 나도 얼마 오래지 않아 여자 친구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지금도 문득, 그날밤 그녀는 무슨 꿈을 꿨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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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밥 먹고 사는 일로 바쁜 사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줄 또 한 분의 거목이 가셨습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에 같은 순간을 살았던 영광을 고마워하며 짧은 순간 순시울을 붉힌 것으로 초라한 조문을 대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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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브로드밴드 무선 인터넷 설치기


며칠 전 LG 엑스피드를 해지하고 SK 브로드밴드를 설치했습니다.

LG Xpeed 해지 및 SK 브로드밴드 설치기

그리고 별도로 SK 브로드밴드 무선 인터넷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SK의 무선 인터넷은 위 포스팅에도 썼듯이 원래 유료로 지원되지만 저의 경우는 처음 신청할 때 무료로 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아무 댓가 없이 그냥 설치해 주었습니다.

외출 중에 와서 설치해 주고 가셨는데 집에 와 보니 큼직한 또 하나의 중계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제 컴퓨터 본체 위에는 세개의 박스에서 무려 열세 개의 불빛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뎀, 또 하나는 무선 전화기 중계기, 나머지 하나는 무선 인터넷 중계기.

그 중에서도 무선 전화기 중계기는 제가 돈을 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새 것인데 나머지 두 개는 중고입니다. 그 중에서도 무선 중계기는 많이 낡아서 두 개씩이나 달려있는 안테나는 혼자 서지를 못합니다.

무선 인터넷이 그래도 속도는 제법 나오더군요. 그냥 웹 서핑을 하는데는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고 사진이나 자료를 다운받는 것도 보내는 쪽의 속도가 문제가 되지 받는 속도는 전혀 제한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영상은 아직 다운을 받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증받은 컴퓨터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무선 인터넷의 장점이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인데 그것이 제 집에서는 제공 불가능한 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마침 제게 무선 랜 카드가 따로 하나 있어서 데스크탑에서 연결해 보았습니다. 역시 연결되지 않는군요. 설치 기사님의 설명으로는 '맥 방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군요. 꼭 원한다면 설치 기사님이 찾아와서 사용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친절(?)한 답변과 함께···.

설치 하기 전에는 '집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현을 몇 번에 걸쳐서 확인하던데 그것이 한 대밖에 쓸 수 없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노트북 들고 문 밖에 나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설치한지 3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인터넷 전화는 사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번호 이동에 시간이 일주일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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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Xpeed 해지 및 SK 브로드밴드 설치기





지난 1년 반동안 엑스피드를 써왔습니다.

사실 엑스피드를 쓰는 동안에는 불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속도도 만족스러웠고 고장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무선 인터넷을 쓰고 싶어서 인터넷 전화를 신청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인터넷 전화를 쓰면 전화도 저렴하게 이용하면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인터넷에 무선 전화기를 신청하는 것은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아가씨는 성의가 없는 무뚝한 어투로 전화기 추가 설치 비용(10만원 정도)을 약정 기간 할부로 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역 대리점 번호를 안내해 달라고 했지만 자신들은 알 수가 없다며 못해준다는 것입니다. 허걱~

개인적으로 알아본 지역 대리점에서는 오히려 본사에서 제시한 가격보다 더 많은 기기값을 요구했습니다.

다시 본사에 해지 요청을 하자 그제서야 우왕좌왕, 무슨 서비스를 해준다, 무슨 혜택을 준다 했지만 이미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SK 브로드밴드로 마음을 먹고 여기저기 알아본 후 제일 친절해 보이는 곳을 골라 신청했습니다. (신청만 받는 곳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많군요)

3년 약정에 사은품으로 현금 24만원을 준다고 했고 요금은 2만3900원이랍니다. 기타 기기값이나 설치비 등의 비용은 일체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번호는 기존에 쓰는 것 그대로 사용 가능하고 발신자 번호 표시 서비스는 월 이용료 1000원인데 1년간 의무 사용이랍니다.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설치 기사가 왔는데 허걱~~!!

중간에 모뎀이 있는 방식이군요. 엑스피드에는 없었는데. 이 모뎀은 기존 KT의 ADSL이나 VDSL에서도 경험했지만 주기적으로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씩 꼭 고장이 납니다. 어떤 때는 전원을 껐다가 켜면 바로 해결되기만 어떤 때는 언제 올지 모르는 A/S기사를 마냥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속도도 엑스피드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는 얘기도 그제서야 들었습니다.

설치 기사도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특히 엑스피드가 시설이 잘 돼 있기 때문에 그냥 다시 쓰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다시 엘지의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지 번민이 많았지만 전화를 했습니다. 대리점에서는 재신청이 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본사로 신청했습니다.

3년 약정에 요금은 29900원, 사은품은 상품권으로 15만원. 요금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안정적이라는 말을 믿고 설치할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청을 완료할려면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주민증은 지갑과 함께 차에 있고 차는 아내가 끌고 나간 상태입니다.

저는 통화 과정에서 이미 여러번 제 신분을 확인했고 주민번호, 통장번호, 집 주소, 전화번호까지 다 말했으며 제 기록은 이미 전 설치때 입력해 두었던 것이 있기 때문에 모두 확인되는 상황이었지만 신분증에 있는 발급 일자를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설치한 후 계약서를 쓸 때 모두 보여드리겠다고 했지만 신청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니미럴~~.

요금이 비싼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이런 황당한 요구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저같은 소시민들의 특징이란걸 대기업은 모르는가 봅니다.

조금 불안정하지만 마냥 고장만 나는 것도 아닐테고 그냥 SK 브로드밴드를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속도는 엑스피드 못지 않게 나왔습니다. 무선 전화기 사용은 번호 이동 관계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SK도 쉽지는 않네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따로 신청을 해야 한답니다. 처음에 신청할 때는 분명히 공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청할려고 하니까 월 1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걱~~

"아니! 신청할 때는 분명히 공짜라고 했는데···"
"그럼 다시 확인해 볼께요."
한 1분 정도 흐른 후,
"공짜로 해드릴께요."
"아니 안 된다고 할 땐 언제고, 그새 공짜로 바뀌나요?"
"공짜로 해주기로 신청이 돼 있기 때문에···"
"그런 신청이 됐는지 1분만에 확인이 돼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래서 결국은 공짜로 설치해 주기로 했습니다.

또 하나 단점은 전화기를 한 대밖에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쪼그만 집에 두 대 설치해 두고 편하게 받을 수 있었는데 비록 무선이긴 하지만 한 대만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추가할 방법이 없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인터넷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확인된 것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인터넷 영상을 보고 있는데 다운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웹 서핑을 할 때도 멀쩡한 사이트가 없다는 둥의 이해 안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성격이 괴팍해서 장기 약정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인터넷 신청은 어쩔 수 없이 장기 약정을 했습니다. 어찌되었던간에 앞으로 3년 무사히 쓸 수 있길 바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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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은 사이, 민주주의는 떠났습니다



우리가 잠깐 그를 잊은 사이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그렇게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민주주의를 위해 그는 어려운 걸음을 내딛어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환호하며 동참할 때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듯 했습니다.

우리는 그게 다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쉽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로써 만들어가는 가치입니다.

피로써 지켜가는 가치입니다. 그 가치의 고마움을 모를 때

민주주의는 또 이렇게 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그를 잊었을 때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홀연히 떠났습니다.




이렇게 떠나 보낼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토끼눈을 하고서

떠나는 뒷 모습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마음 속으로 외쳐 봅니다. '민주주의여!'









노무현 대통령님,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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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 관련 정보들 찾기가 너무 어렵다



우분투는 참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군요. 오픈 소스라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별로 없군요.

그 중에서도 세벌식 사용자는 더욱 찾기 힘들고 신세벌식 사용자는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우분투에서 메일 주소 등을 표시할 때 쓰는 @(골뱅이)를 입력하는 키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인터넷을 암만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를 입력하지 못해서 그냥 한글로 '골뱅이'라고 쓴 것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써서는 이메일 주소를 입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설마 자판에 없겠어 하는 심정으로 모든 키를 다 눌러 봤습니다. 그랬더니 있군요. 세벌식 한글 키보드에는 없고 영문 키보드에는 바로 [ 자리에 배치돼 있네요.

또 당황스러운 것은 세벌식 최종 키보드가 윈도우에서 쓰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 자리에 있는 ㅌ이 엉뚱하게 Shift-7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왜 4를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4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가 떡 자리를 잡았군요.

그런데 웹상에서는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윈도에서는 신세벌식을 쓰고 있는데 우분투에서는 그냥 세벌식 최종을 쓰고 있습니다. 자리는 신세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냥 저냥 쓰고 있는데 혹시 누가 관련 프로그램을 아시는 분 있나요?

아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면 친절한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우분투···

일단 속도는 굉장히 빠른 것 같습니다. 부팅 속도도 빠르고 프로그램 실행 속도도 체감할 만큼 빠릅니다. 특히 불여우와 궁합이 잘 맞아서인지 인터넷 접속 속도도 빠른 것 같습니다.

또 윈도 7 창 우측하단에 있는, 평가본이라는 보기 싫은 문구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기쁩니다. 더불어 내년 3월이면 사용기간이 끝난다는 찝찝한 기분에서도 해방됐습니다.

다만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는 윈 xp, 윈도 7, 우분투까지 화려한 멀티부팅 신공으로 버텨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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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의 바다로... 설치 과정은 너무나 간단


우분투를 깔았습니다.



너무 쉽고 간단했습니다.

다운받기-데몬툴에 싣기-클릭 몇 번-끝

그랬더니 그 동안 써 오던 win xp, win 7에 우분투까지 모두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운영체계라 여러 점에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불여우 애드온도 다 다시 깔아야 하고 제가 주로 쓰는 신세벌식도 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설정들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점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조심스럽게 써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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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라의 또 한 사람의 큰 별이 지셨습니다.

모든 관계를 떠나 자연인 노무현의 죽음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나아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나라를 5년간 책임지고 운영해 온 대통령으로서 고민이 많았을 그였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빕니다.

이제 더 이상은 누구든 스스로 이 세상을 버리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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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경신, 그리고 헌혈까지


며칠 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운전면허 갱신을 촉구하는 우편이 날아왔습니다.

사실 운전면허야 딸 때야 그만큼 감격스러운 일이 없지만 따고 난 다음에는 한 번 꺼내 볼 일조차도 없잖아요. 그나마 주민증은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가끔 쓸 일이 있지만 운전면허는 교통경찰에게 붙들렸을 때나 꺼내는 것이니 조금만 조심해서 1년이고 10년이고 지갑 안에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경신 기간을 깜빡 잊고 놓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면허증을 확인해 보니 허걱! 이게 웬 일입니까. 이미 경신 기간이 지나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편물에는 아직 두어 달이 더 남아 있는데요.

그래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 새 법이 바뀌어서 이전에 경신 기간이 자신의 생일에서부터 3개월간이던 것이 6개월간으로 바뀌었더군요.






다른 불 일이 있어 노원역 근처에 갔던 길에 도봉면허시험장에 들렀습니다.(분명히 노원구에 있는데 이름은 '도봉'이더군요)

안내에 따라 새 면허를 받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고 비슷한 업무가 반복되는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시스템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서 지체되는 시간이 거의 없이 착착 진행됐습니다.

3*4cm짜리 증명사진을 가지고 갔고 안내하는 곳에 가서 구 면허증을 제시하고 경신하러 왔다고 하니 양식 한 장을 줬습니다. 시키는 대로 빈칸을 채우고 지하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신체검사는 시력 측정과 앉았다 일어서기··· 다시 1층으로 올라와 인지를 붙이고 접수를 하니 채 3분도 기다리지 않고 새 면허증이 나왔습니다. 비용은 신체검사 5000원과 인지대 10000원 등 총 1만5천원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면허증은 아마도 시중에 아직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구형 면허증일 것입니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 있는 헌혈의 집에 들러 오랜만에 헌혈을 했습니다. 대학다니던 시절에는 곧잘 하곤 했는데 졸업 이후에는 좀 뜸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총 17번 했는데 2003년에 한 것이 마지막이랍니다.

그동안 헌혈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초코파이는 주지 않았고 다가오는 장마철에 대비해 우산을 기념품으로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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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초와 콩나무





우리집 베란다에 사랑초가 활짝 피었습니다. 그동안 키우던 나무나 꽃들이 대부분 잘 자라지 않아 많이 속상했었는데 잘 자라는데다가 꽃까지 피우니 기분이 좋습니다.

사랑초는 신기하게도 밤이 돼면 마치 나비가 내려앉은 것처럼 소복이 이파리를 접었다가 햇볕이 비치면 다시 날개를 펼칩니다.



사랑초의 꽃은 수줍은 꼬마처럼 이파리들 틈에 숨어서 다소곳이 피어납니다.



요것은 이웃집 아줌마가 지난 식목일에 00마트에 갔다가 받아다며 한 개 준 무슨 콩나무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잘 자라서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옮겨 심은 후 한동안 몸살을 앓는지 꿈쩍을 안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다시 이파리가 피어납니다.

아래쪽에 하늘하늘거리는 것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가져온 것입니다. 아들도 식목일에 심은 것이라는데 상추인가 봅니다.

애초 아주 작은 화분에 여러개가 심겨 있었는에 웃자라는 것 같아서 제일 실한 놈으로 몇개를 골라 콩나무 아래에 심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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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서 받은 카네이션



유치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을 만들어 왔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아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고 보니 또 묵직한 책임감이 전해 옵니다.



어린 시절 저희 고향에서는 어버이날은 일년 중 가장 큰 기념일 중 하나였고 온 동네 어를들은 모두 가슴에 빨간 꽃을 달고 하루 종일 요란하게 놀고 떠들었습니다.

마을 회관에 모들 동세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유일한 그 날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어버이날은 쉬지도 않는 그런 평범도 못한 하루지만 어버이는 시골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들 녀석이 만들어준 카네이션은 마침 환갑을 맞아 겸사겸사 해서 올라온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려야겠습니다.

그동안 서울 산다는 이유로 남들 다 다는 그 빨간 꽃을 한 번 달아드리지 못한 지난 20여년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까요?

세상 모든 어버이들··· 힘 드시더라도 모두 꿋꿋하시길 빌겠습니다. 더불어 내일의 새싹들이 곱게 자랄 수 있도록 더욱 애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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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구글 애드센스 PIN을 받다


드디어 저도 구글 애드센스 PIN 번호를 받았습니다. 구글 애드센스를 시작한지 한 5개월 만입니다. 빠른 건지 늦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이 통과가 되서 PIN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고요.

구글로부터 PIN을 보냈다는 메일을 받은지 17일 만입니다.

구글 애드센스센스 계정에는 벌써 지급 보류를 해제하라는 메세지가 떴지만 어차피 PIN 번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루다가 오늘 핀을 받은 김에 지급 보류를 해제했습니다.

절차는 예상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받은 국제 우편에는 한글로 너무 쉽게 핀 입력 과정이 설명돼 있었습니다. 다만 지불내역과 지급 내역이 혼용돼 있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또 세금과 관련된 조항이 있었는데 제 경우는 모두 아니오였고 다만 마지막에 '웹 게시자 서명'란이 있었는데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제 이름을 썼더니 통과되더군요.

지급 형식은 일반 우편과 속달 등기를 선택하는 것이었는데 속달 등기는 $24나 든다네요. $24 벌려면 방문자가 몇 명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사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저로서는 구글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참 스트레스 받는 일입니다. 그것은 구글이 우리 말로 번역돼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글 코리아의 번역 솜씨는 참 뷁입니다.

세계적 기업 구글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약발이 안 먹히는 것은 제 생각에는 번역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100만 넘기면 자동으로 입금되는 것인가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도대체 언제 한 번 받아보게 될까요? 산술적으로는 35개월이 나오네요.

오늘 처음으로 일일 클릭수 8을 기록했습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 어쨌든 희망이라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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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시간 핑계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여러분 108배 해보셨어요?

저는 모든 신비주의를 배격합니다. 특히 '뭔가 알 수 없는 힘' 등의 표현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 108배와 관련해서도 종교적 힘, 기 철학적 이치, 한의학적 원리 등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경험상 이 '절'이라는 것이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운동이라는 데 공감할 뿐입니다. 전신운동이 가능하면서 유산소운동이 아닌 근육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더 제 관심을 유도했습니다.

그 횟수가 108번이든 아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경험상 108배 정도면 힘들다는 느낌과 견딜만하다는 느낌, 다시 또 해야지 하고 맘 먹을 때 거부감이 없는 수치였습니다.

애 초에 108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내의 운동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여러 번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 게으름때문에 쉽게 실천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핑계를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집에는 아직 혼자 있기에는 어린 아들이 있고 낮 시간에는 또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시간 내기 힘든 아내를 위해 시작한 운동

제가 일찍 들어와야 조깅이라도 나가는데 그것마저 늦는 날이 많으니 운동은 자꾸만 늦춰지고 원하지 않는 살은 자꾸 옆구리에 붙어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가 제안한 것이 바로 108배였습니다. 가장 장점은 제가 먼저 함으로써 아내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 문제가 아니었고 저는 운동의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았기에 금방 그만뒀고 아내도 저를 따라 포기했습니다.

그 후 1년여. 제 옆구리에도 제법 비계들이 자리잡았습니다. 20년 넘게 유지해 오던 몸무게도 그 사이 3kg정도 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불암산 등산을 다녀야겠다는 수도 없이 했지만 천성적인 게으름은 이를 실천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떤 방송을 언뜻 보고 다시 떠올린 것이 바로 108배입니다.

요 령도 따로 없고 구체적인 방법도 모릅니다. 다만 어를들께 세배하는 방식으로 절을 하는 게 아니라 불교에서 하는 방식으로 절을 한다는 정도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다만 운동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호흡이나 이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특별한 요령 없이 TV 보며 절하기

108배가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운동 시간은 내기에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주로 몰려 있는 시간인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TV를 보면서 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TV 보다가 생각나면 바로 일어서서 시작하는 것이죠.

23일 처음 하고 이틀 후인 어제 두 번째로 했습니다.

처 음 20개 까지는 뭐하나 하는 찰나에 휙 지나갑니다. 30개 쯤부터 '요거 운동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50개 쯤 가면 땀이 이마에 삭 배더군요. 70개 쯤 하면 이마가 닿는 부분이 완전히 젖습니다. 100개개 넘어갈 때 쯤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108개가 됐을 때는 딱 한 번의 고비를 넘긴 다음입니다. 시간은 15분 쯤 걸립니다.

첫 날은 운동 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리도 조금 후들거렸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은 일부러 하루 쉬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11시에 하고 지금 두 시간이 채 안됐는데 몸은 이미 운동 전 후가 크게 다르지 않게 느낄 정도로 어렵지 않은 정도입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언뜻 본 바에 따르면 운동 강도(칼로리 소모량)는 상당하더군요(수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이 정도면 매일, 적어도 하루 걸러 한 번은 핑계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 11시에 하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들도 아니니까 편한 마음으로 TV 보면서 웃으면서 15분 정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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