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씨 무뇌 논란--아니라면 적극적 발언 보여주시길...


김주하씨 무뇌 논란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변호사가 없어서인지 별 진전 없이 살짝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누구는 애초 김주하씨에게 "무뇌"라고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게한 소셜홀릭이라는 사람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누구는 김주하씨에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http://twtkr.com/poll/viewPoll.php?poll_id=P1or

처음 김주하씨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언듯 제목만 보고 뜨끔했던 사람으로서 침묵할 수가 없어서 한 마디 씁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 5월 말. 김주하씨 트윗에 쓴 답글입니다. 제 팔로워에게 보내는 리트윗이 아니라 답글이라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제가 트윗을 시작한 것이 올해 초쯤. 그리고 바로 팔로잉을 한 몇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주하씨였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이 '무척 바쁜 사람이구나.... '

그러던 중 누군가는 김주하씨에게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식견을 묻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주하씨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일도 없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김주하씨에게 팔로잉할 때 나만 "무언가 기대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김주하씨가 '졸리신 분 손' 할 때 얼른 "여기 한 명 추가요" 등의 답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답글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매일 반복되는 멘션인 것을 알게되고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간간이 어떤 봉사 활동 등의 문제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시, 드러내기에 불과하게 느껴졌습니다. 

길어야 한 줄을 넘지 않는 대부분의 멘션들... 그러던 차 자그마치 네 줄을 넘는 글이 쓰여졌는데 그 내용은...

행복, 건강...... 가득하시길..... 

제가 어느 목사나 승려에게 팔로잉했다면 감동할 수도 있지만 김주하님의 글에는 오히려 강력한 반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더 오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위와 같은 다소 공격적인 글을 남기고 뚝딱 "언팔"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제 트윗에도 엄청나게 많은 팔로잉들이 생겨서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글들이 타임라인을 채웁니다. 하지만 그에 일일이 대응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 중에는 연예인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각종 홍보성 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발끈하고 자극적인 답글을 달고 언팔한 것은 오직 김주하씨 뿐입니다.

본인이 듣기에는 화가 나고 어떻게든 대응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글에 비하면 이번 소셜홀릭님의 글은 수위도 낮고 글도 길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까지 모은다니 저도 겁이 덜컥 났습니다.

당연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다시 언팔했던 김주하씨의 트윗에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역시 여전히 두 줄을 넘는 트윗은 찾기 힘들고 나름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트윗은 없었습니다. 단 하나 소셜홀릭님의 글에 대해 발끈하는 글이 오혀려 반가울 정도입니다.

아마도 소셜홀릭을 비롯해 많은 트위터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멘션일 것입니다. 

정치적 문제는 민감하니 빼더라도 뉴스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짧은 언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김주하"라는 타이틀에 대한 사회적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팔로잉하고 있는 이외수, 김미화, 남희석 등은 모두 자신의 지위에 맞는 멘션으로 트위터에서도 인기를 모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은 여러번에 걸쳐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10만이 넘는 상대를 두고 혼자서 "개인적"이라고 외치는 것은 공허합니다. 그리고 그 10만명은 모두 MBC, 기자, 아나운서, 예쁜 얼굴"까지 김주하씨가 가지고 있는 지위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옆집 아줌마" "행인 1"이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뉴스 전달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나름의 현장에서의 감동을 조금씩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저작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김황식 총리의 노인 지하철 무료 반대 그리고 보편적 복지


김황식 총리가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말인 즉슨, 부자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에게도 똑같이 무료혜택을 주는 것은 과잉 복지라는 것이다.

상당히 타당한 말로 들린다. 없는 사람만 도와줘도 부족한 판인데 늙었다고 부자들까지 도와주는 것은 혈세 낭비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편적 복지.....

지난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에서 이슈가 됐던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에서도 이 말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부자들도 빈민층에 대한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바로 그것이다.

빈곤층이 많아지면 기존 질서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이 커지고 이는 곧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부자들이 이미 더 잘 알고 있다. 고로 미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빈곤층에게 베풀면 이들의 불만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을 구호처럼 만든 것이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다.

평생 부유한 삶을 살아온 김황식 총리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게으른 사람들에게 줄 돈은 없다........."

우리의 옛날 이야기 속에서도 나오는 부자집 선행은 대부분 이런 행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돌아보자.

청동기라는 무기가 발명되기 이전. 한 사람이 부지런히 사냥을 해도 온가족이 넉넉히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누구의 것을 빼앗을 것도 없고 빼앗길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자연히 이루어진 평등사회였다.

하지만 생산량이 늘면서 "잉여"라는 것이 생기고 힘 있는 사람은 이를 독차지하고 여기서부터 빈부의 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역사가 흐르고 생산량이 늘면서 이 빈부의 차는 끝 없이 커지고 빈곤층은 여전히 죽을동 살동인데 부유층은 배둘레에 두둑한 비계층을 형성했다.

그리고 수도 없는 빈곤층들의 반란... 그 과정에서 부자들도 자연스럽게 일정부분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방법으로 이들을 달래기도 했다.

그래도 욕심많은 부자들의 베풂은 언제나 부족했기에 "공산주의"라는 역사적으로 어마어마한 실험이 시도된 것이다. 극단적인 평등의 지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교훈이 았었다. 바로 보편적 복지가 그 교훈들 가운데 한가지다.

어차피 사회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할 수는 없지만 빈곤층의 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려 사회적 안정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부자들이 마치 선심쓰듯이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내어놓는 형식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이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현되는 것이 바로 누진세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월 1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세금이 없고 300만원을 버는 사람은 10만원, 500만원을 버는 사람은 50만원, 1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200만원, 1억원을 버는 사람은 4000만원.

또 10평 집에 살면 세금이 없고 20평에 살면 10만원, 30평에 살면 30만원, 50평에 살면 100만원, 100평에 살면 2000만원.

이렇게 쌓인 돈으로 서민들의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라 함은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펵적으로 필요한 분야에서 누구나 기본 수준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나 병원에 가면 일정 수준 이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누구나 학교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도 그렇고 노인들의 안정적인 생활 보장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삶에 대한 보장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우리 사회는 복지가 이루어졌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의 서민들이 과감하게 경제적 투자를 할 수 없는 것도 실패했을 때 맞아야 하는 비참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성공했을 때 얻는 성취감을 짓누르고 남을 정도의 실패의 비참함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령 도전에 실패했더라도 꽤 안정된 수준의 삶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언제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도전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 경제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경제력의 바탕에는 젊은이들의 피땀이 있었다. 결코 박정희 덕분도 정주영 덕분도 아니다.

지금까지 경제적 수준이 열악했을 때 젊은이들의 피땀이 필요했다면,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이뤘다면 기꺼이 인정할만 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소비를 진작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만이 3만~4만 달러 시대로 갈 수 있다. 이제는 부자들의 돈이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 내려올 것이라는 꿈은 깨자.




Creative Commons License저작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배추값 폭등... 농민 목소리는 어디에..


배추값 폭등에 온갖 언론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김치는 금치를 넘어서 다이아몬드치랍니다. 식당에서 김치 더 달라고 했다가 쫒겨난다는 기사까지 올라왔습니다.

모두 도시 소비자들의 목소리입니다. 농민들의 시선에서 배추값 폭등이 갖는 의미는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모두들 배추값 내릴 생각만 하지 생산 구조문제 개선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뜬금없이 중간 상인들을 잡기도 합니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지도 못하는 매점매석 얘기가 나오고 밭뙈기가 문제랍니다.

먼저.. 농민들...

생산량 줄면 가격 인상하는 것 당연합니다. 그동안 생산량 급증으로 밭에서 그대로 갈아엎은 적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종자값도 안 될 때도 다반사입니다. 

농민들은 오히려 흉년이 들어야 농사 망친 사람들은 죽더라도 그나마 어떻게 건진 사람들은 대박나는 것입니다. 3~4년 허탕하다가 1년 대박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쌀농사는 그나마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지만 채소값은 그 등락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시장에서 농산물의 상품으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 공급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암만 비싸도 안 먹을 수 없고, 암만 싸도 생산량을 금방 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실패가 뻔한 상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산품 유통은 
주식시장 다음으로 완전경쟁시장입니다. 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로 모든 가격이 결정됩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잘 짓는 것보다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 어느 날 출하할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마치 주식을 하는 사람처럼... 그런데 그것을 적어도 출하 6개월 전에 결정해야 한드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시장에 맞겨놓고 멀뚱히 보고 있다가 가격 폭등하면 중국에서 수입하겠다는 것이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입니다.

농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수익입니다. 어떤 작물을 선택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일정 정도 이상 수확하면 안정된 정도의 수익이 보장된다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왜 모두 고향을 버리겠습니까.

또. 자꾸 상인들 탓하는데.
그 근거가 되는 것이 입도선매 또는 밭뙈기인 것 같은데......

부디 모르는 소리 작작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농민을 욕할 수 없으니까 마녀사냥 식으로 찾아낸 희생양일 뿐입니다.

중간 상인에게 밭뙈기로 넘기는 농민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공생관계이지 누구에게 책임을 떠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은 언제나 출하나 생산과정에 대한 과부하를 감당하기에 벅찹니다. 생산에 신경쓰기에도 지칠 지경인데 가장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수확과정을 누군가가 감당해 준다면 아주 편한 일입니다. 게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농산물 가격을 미리 흥정해서 결정해 준다면 그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농민 입장에서는 안정적 가격과 수확 과정의 인력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메리트가 큰 거래입니다.

상인 입장에선 폭락 시장만 피한다면 대규모 자본으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해결 방법은....

우선 농산물의 안정적인 가격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유통과정에 정부가 개입해야 합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어려우면 대기업이 개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정책으로 온갖 혜택을 입은 대기업들이 이제는 농민을 위해 나설 때입니다. 100대 대기업들이 종목별로 맡아서 유통을 책임지고 정부가 이를 감시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은 쌀, 엘지는 사과, 배, 현대자동차는 귤, 채소 등을 맡고 유통을 책임진다면 전국적인 규모로 농민들과 개별 계약을 통해 생산을 맡기고 안정된 가격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생산 가능할 것입니다. 

한 기업이 한 종목씩 맡아 독과점이 우려된다면 2~3개 기업에 중복으로 맡겨서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이제 도시 소비자들도 비싼 농산물 가격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도시 소비자들은 농민들의 비싼 땀방울을 너무 소중한 줄 모르로 값 싸게 즐겨왔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미국에 비해 농산물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이들 국가의 값싼 농산물에 기댈 것이 아니라면, 이 나라에도 식량주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지금보다 1.5배 정도의 식료품비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야 농민의 수가 늘고 농산물 생산량도 늘고 농산물 가격도 안정됩니다.

지금처럼 정부는 나몰라라 하고 농민들은 죽어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20년이면 농촌은 텅 비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도 농민인구의 70%는 50대 이상입니다. 그런데 젊은 인구의 유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은 단 5%도 농촌에 남지 않습니다.

지금의 50대 이상이 거의 죽은 후에는 지금 농촌 인구의 30%만 남아 있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



배추값 폭등....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4대강이 탓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핵심이지는 않습니다.

기상 악화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사이에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늘 탓만 할 것입니까.

도시인에게도 농민들에게도 폭등락보다는 안정적인 가격 유지가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