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시민단체 분만 수가 인상 반대 -- 언제까지 그럴래...




노조와 시민단체가 산부인과 분만 수가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네요..

아래는 파이낸셜뉴스 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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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던 산부인과 자연분만 수가 상대가치 점수 50% 인상 방안이 보류됐다.

복지부는 오는 6월 1일 차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열고 관련 안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들은 지난 17일 공동성명을 통해 “정기적으로 매년 이뤄지고 있는 수가계약 이외에 별도로 한 과의 수가만 올리게 되면 전체 수가체계의 불균형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 김태현 국장은 “지난해 외과 전공의 기피로 수가를 100% 인상했는데 부작용으로 환자가 많이 몰리는 대형 병원으로 의사들이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산부인과의 위기는 ‘저출산’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므로 분만실이 없거나 산부인과가 전혀 없는 시골지역에 실질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이 산부인과 수가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쌍벌제 처벌 이후 의료계가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수가를 인상할 경우 수가 인상이 의료계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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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주장에 어느 것 하나 옳은 것이 없습니다.

한 과의 수가만 올리면 수가 전체의 불균형이 온다.

지금 일부 과만 올리는 것은 불규형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수가체계는 지나치게 내과 위주로 돼 있습니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외과 계열(일반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 산부인과 등에 대한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수가 불균형의 문제는 시민단체보다 의료계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당사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해결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과 계열에서도 내과의 수가를 빼어다가 외과나 산부인과를 도와주는 형식이 아니라면 동의하고 있습니다.

외과 수가 인상으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형병원으로 전공의가 몰리는 것이 수가 인상의 부작용이라는 주장인지, 수가 인상 전에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는 것인지, 어쩌면 인지상정의 문제를 하나의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주장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산부인과 위기는 저출산으로 기인하는 것.

맞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직 저출산만이 원인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수가 인상 반대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저출산이어도 산부인과는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이들에게 일정 수익은 확보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설마 여기서 뜬금없이 시장경제를 이야기하진 않겠지요.

산부인과가 전혀 없는 시골에 다른 정책 대안 만들어야.

맞습니다. 시골에도 산부인과가 있어야 한다면 정부에서 직접 산부인과를 건립하던가 아니면 시골에 있는 산부인과에 별도의 지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산부인과도 속속 폐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별도의 지원을 할 겁니까? 아니면 수가를 인상할 것입니까?

수가 인상이 전 의료계로 확산될 수 있다.

현재 의료 전반이 저수가라는 것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보험 재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정 과가 인상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과는 인상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파이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정 파이를 합리적으로 나누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수년 전 위 산부인과 수가 인상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보험료와 수가 인상,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빅딜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난을 이유로 보험료 인상 동결과 수가의 최저수준 인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보장성 강화는 물 건너 갔습니다.

정부는 건강보험료 인상이 정권에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언제나 이를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민단체까지 이에 동조하면 건강보험 재정은 계속 악화되고 의료서비스 수준은 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건강보험 수준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의사 목을 죄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대우해 주고 적절한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수가 인상은 무조건 의사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에 앞서 산부인과, 외과 등 일부 계열의 수가 현실화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김용옥, 천안함 사건 정부발표 "웃기는 소리올시다"



도올 김용옥 봉은사 특강

천안함 사건, 일방적 발표, 진실은 알 길 없어...

철저한 정보 통제, 칼기 폭파도 똑 같아...

이명박 뽑은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 있어야....

최첨단 이지스함 뚫고 와서 뻥! "웃기는 소리올시다!"

우리나라 강은 정비 잘 된 강, 수질개선 하려면 처리시설 만들어서 중소기업에 맡겨야


원문 : From 오마이뉴스




명진스님은 대각자다. 제가 남 칭찬 함부로 하는 거 봤어요. 제가 저분을 대각자라고 하는 것은 사실의 기준, 사실이라는 거죠. 저한테 "한국 불교의 화두를 어떻게 보냐"고 물어요. 아니 화두를 본다니. 화두라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것이야. 화두라는 것은 물음이지. 화두라고 하는 물음 자기 안에서 나와야 화두지.

명진은 6살에 모친이 자살을 하셨다고 젊을 때에 그 마음은 끊임없는, '왜 우리 엄마는 죽었나', '누가 죽였는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게 화두 아니에요.  저는 부잣집에서 편하게 산 사람인데, 그래서 명진스님같은 사람을 만나면 존경스러워. 그래서 정신적으로 일찍 컸어요. 그것을 승화해서 뭔가 바른 길로 타협 없이 가는 것은 사회적인, 무슨 북한을 도와주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시대에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 타협 없는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아니면 못하는 것이다.

하여튼 마침 내가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나는 요즘 길거리를 다니면 인사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외국에서 온 학자들이 놀래요. "대한민국에서는 간디가 지나가도 너만큼 인사 못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지식인에 대한 존경이 있어요.

그런데 길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 "왜 요새 안 나오냐"는 거예요. 그런데 아니, 나올 기회를 줘야지.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명박씨가 도올을 나오게 하지 말라는, 대중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않았겠지만 우리나라는 알아서 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방송국에서 나를 초청하나, 라디오에서 초청하나, 신문사도 초청을 안 한다. 과격한 신문에서도 저놈은 좌파적인 성향이 아니다 판단을 하는지, 하여튼 우파좌파, 어느 쪽에서도 나는 환영을 못 받아요. 그렇게 해서 도무지 나갈 기회도 없고, 발언의 기회도 없어요. 그래서 요즘 마음 편하게 살거든요.

그래서 세상에 관심이 없었는데 명신스님 때문에 여기서 얘기를 하게 됐고, 어차피 세상일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하면 섭섭해요. 그런데 하필 나는 그냥 멋있게 후루룩 깔려고 했는데, 천안함 발표를 한다네. 그래서 발표를 들여다봤죠. 그런데 여기서 또 이런 말하면 내가 잡혀가겠지만, 나는  0.0001%도 사실은 설득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감옥에 안 가려면 0.0001%는 남겨 놨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천안함 사태가 발표를 하는데, 우선 구역질나는 게, 아니, 장성들이 앉아가지고 계급장이나 떼고 나오지, 패잔병 새끼들이, 자기들의 부하들, 불쌍한 국민들을 죽여 놓고, 앉아가지고, 거기서 무슨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겁을 주면서 발표하는 그 자세가 우선 구역질이나 못견디겠다. 일본의 사무라이라면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나는 그때 뭘 하고 있었느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있었어요. 머리가 공부 할만하다. 젊을 때 아무리 책을 봐도 모르겠다. 칸트가 뭔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평생을 읽고 또 읽고 뭔 개소린지. 요새 보면 좀 이해가 되요 그 깨달음이 올 때 사람이 기뻐져요. 책을 읽는 게 재미가 있어요. 그런 머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천안함 발표는 어땠을까.

우선, 칸트는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아는가.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아는가는 우선 감성과 오성 이성으로 세 단계를 나눠요. 감성의 형식이라는 것은 시간의 형태를 우리가 감각자료로 들어오는 것인 시간 시간과 공간속에 들어온 것이잖아요. 그 감각 속에 오성의 12범주가 적용된다.

"패잔병들이 발표하는 것 어떻게 믿어?"

문제는 천안함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공의 감각소요가 없어요. 우리가 몰라. 자기들이 뭔 발표를 하던 그 발표의 내용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설적 추론의 제기다. 왜, 우리가 못 봤잖아. 천안함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봤어요?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조리 정보를 차단했어요.

장교들은 모조리 살아나고 사병들은 싹 죽어버리고, 그 사람들은 나오자마자, 접근 차단하고, 나중에 함미를 건질 때 속에서 어렵게 싸가지고 둘둘둘 말아서 건지고, 접근도 못하게 하고. 밑에서 나온 거 가지고 뭐 했다지만, 여기에 대해 진의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게 뭐 화약이 어디와 비슷하다면 그것을 나한테 줘야지. 내가 일본이나 독일의 과학자들에게 가서 무엇과 일치하느냐. 내가 확인 할 수 있다면 나는 믿겠어요. 그런데 패잔병들이 당하고 나서 거기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어.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시면 큰일 나요. 왜? 반증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를 그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증을 할 수가 없다. 왜 해필 선거 때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선거 앞두고 닷새 전에 쌍끌이 어선을 끌었다는 또 민간인을 데리고 나왔어.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천운이올시다'. 이걸 건진 게 천운이란다. 그 천운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것도 개판이었던 거지. 여러분들은 반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가설의 체계를 가지고 정부가 미국과 전 세계가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쌩으로 거짓말 시킬 수 있소, 가설이라고, 그럴듯한 가설 아니오.

그런데 생각을 해봐라. 미국이 하는 짓이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 무기가 있다고 어마어마한 전쟁을 일으키고 거기에 책임 하나 졌는가. 우리 역사를 한번 생각해봐라. 노태우가 선거하기 직전에 김현희가 돌아왔다. 자국민 몇 백명이 어떻게 죽었는지 지금까지 모른다. 잔해도 못 찾았다. 그 식구들은 내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김현희는 버젓이 잘 산다. 아웅산 사건이 뭐냐. 천안함 사건이 뭐냐. 우리가 알 길이 없다고.

국민은 내내 이런 것에 의해서 기만당해서 사는 것이고,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렇지만 결국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만약 북한이 이 일을 안했다고 했다면, 기뢰가 터질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으니까, 암초설도 있고, 미국이 개입했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유언비어 수준에서 다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러나 결국 이런 사태에 대해서 만약 북한이 이것을 안 했다면 얼마나 북한 사회가 억울하겠나.

이런 가설을 세우는 사람은 없는데, 나는 철학자니까 얼마든지 이런 가설을 내가 세울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 텐데, 안보리 회부되고 앞으로 역사가 진행되면 북한이 끽 소리 하겠어요. 북한이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국제 사회에서 공신력을 얻지 못하고 그들이 살아온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불쌍하게 살아왔다. 그러니 힘없고, 끽 소리 없이 당합니다. 그럼 그 당한 모습을 보고 여러분들은 박수를 쳐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대자대비의 연민의 정을 가질 수 없나.

발표를 보기 전까지 칸트의 순수이성, 실천이성 비판을 읽고 있다가, 돌아가서 눈물이 나더라. 이거 뭔가 사기다. 세상이 허위로 돌아가고 있구나. 내 소신이다. 그러나 결국 이 순간에 내가 돌아가서, 나는 그 때 안병무 선생의 <역설의 해설>이라는 책을 들었다. 안병무 선생은 민중 신학을 만든 사람이다. 그 분이 말하는 '예수도, 우리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모르듯이, 예수도 우리가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이라는 것은 천안함 사건은 군사 사건이다. 그러나 예수사건은 민중 사건이다. 예수가 민중 속에서 민중들과 살면서 민중을 위해서 일으킨 민중 사건이다. 자기는 왜 이러한 민중 사건을 예수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나.

'하나님이 민중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은 민중 스스로 구원한다'는 것이 오늘날 안병구 선생의 '민중구원론'인데. 오늘날 내가 볼 때, 앉아서 내가 기도를 하면서 당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것이라는 민중이 이렇게 이명박에게 놀아나는 어리석은 민중이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기아에서 허덕이던 그들이 지금은 부자가 되었다. 대기업의 노조, 엄청난, 그러면 도대체 민중은 누가 구원하는가, 하나님이 하나님 스스로를 버렸다. 민중이 민중을 배반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나는 어떤 것을 나의 삶의 가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이 민중이라고 하지만, 결국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분명히 잘 살게 되었지만, 결국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잘 살게 됐을 지라도 우리는 정말 형편없는 민중으로 타락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대자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각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저 북한에 있는 아무리 김일성, 김정일이가 좋던 나쁘던 이런 문제를 떠나서 거기에 있는 민중들은 도대체 누가 구원을 할 것인가. 앞으로 이렇게 몰아가면서 4대강 사업, 그리고 선거도 다 이길 판으로 갈 판이고, 모든 게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잘 맞아 떨어져 신나게 돼 있다. 그런데 자 이런 식으로 이명박의 드라마대로 이 세계가 움직인다 할지라도 전 세계가 이명박을 위해서 힐러리까지 오고 내일 발표하고, 뭐 한다고 해도, 결국 남는 것은 뭔가. 바로 우리 자신들의 타락 밖에는 남은 게 없다.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있다. 어떻게 해서 만날 지금도 빨갱이 새끼들 응징해야 된다. 이런 말들이 보수 언론에서 꼭 빨갱이 새끼들 응징해야 한다는 말을 그냥 껌 씹듯이 하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천안함이 어쩌고 하지만 결국 역사를 다 지나놓고 보면 공이올시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야. 연기만 있는 것이야. 복잡하게 얽힌 연기만 있는데, 이 연기 구조를 가지고 나쁜 새끼들은 지들에게 편리한 드라마만 짜고 있는 거지.

"언론도 죽이고, 4대강도 죽이고, 우리 삶도 죽이고"

지금 저 부산에서 인천으로 오려면 그냥 동해 바다로 오면 되는데 몇 천 톤짜리 배를 엘리베이터로 산으로 올려서 터널을 통과해서 이래가지고 인천까지, 서울까지 오겠다는 거요. 아니 이런 발상이 얼마나 미친 발상인데, 계속 밀어붙였지 않나. '안 된다.' '안 된다.' 국민들이 도저히 설득이 안 되니까 슬쩍 바꿔서 '4대강 정비사업.' 아니 지금 미쳤어요. 국민 세금을 몇 십조를 강바닥에 퍼붓는다는 이런 미친 짓이 있냐, 이 말이야.

국민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 것은 우리나라 이 강은 정비가 잘 된 강이다. 본류에서 홍수가 나거나 그런 게 없어요. 홍수는 전부 산간지대 지류에서 나는 거예요. 그러고 돈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비오면 터지고 그런 것이다. 대도시의 침수지형 이런 게 문제지, 강바닥의 본류가 문제야. 수질개선을 하려면 지류에서 오염물질 내려오는 것을 국가에서 돈 대서 정수 처리 공장을 만들어서 중소기업이 그런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줘야지.

그런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구청에서 나와서 단속만 한다고 하고, 그 중소기업, 공장하는 사람, 돼지 키우고 소 키우고 오물 나오는 것을 정수 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작은 저수시설 만들고 항상 그렇게 해야 하는데, 똥물을 다 받아서 가두고, 유속을 낮추게 도면 모든 강이 다 썩는다. 이건 보가 아니라 댐이다. 돈을 많이 들여야 하니까.

댐을 짓게 되면 수위가 높아지게 되면 모세관 현상에 의해서 뽀송하게 살던 집들이 다 침수가 된다. 어떤 지역은 더 가물게 되고, 어떤 지역은 더 침수가 된다. 국토 전반에 문제가 생길 판이다. 형편없이 국토를 망치는 일, 홍수라는 것이 물을 잘 흘러야 홍수가 방지되는 것이지. 그것을 다 막고, 댐과 댐의 역동적인 조정 없이는 큰 난리가 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가. 도무지 이해가 안가.

하여튼 눈 먼 돈이 많이 돌아다니게 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게 뻔한데, 토목공사라는 것은 눈 먼 돈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가 왜, 최소한 그래도 이명박씨가 비즈니스맨이었잖아. 어쨌든 사장도 하고 했으면, 비즈니스맨이라는 것은 타협을 할 줄 알고 퇴로도 마련하고 협상도 하고, 회사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인 노력을 해야 할 사람이, 모든 것을 지금 이렇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자기의 터무니없는 비전을 전 국가의 비전으로, 모든 국민에게 강요하고 따르라고 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죽여 간다. 언론도 죽이고, 4대강도 죽이고, 우리의 삶도 죽이고, 무슨 세무검사를 하던 정보부를 데려다 죽이고, 검찰로 해서 죽이고, 다 죽이고 북한 놈들 다 죽이고, 다 죽이자는 거다, 지금.

어떻게 지금 이 시점에서, 21세기 이 개방화시대에 죽음의 정치를 맛보고 있냐는 말이에요. 이 사람을 우리가 뽑았어요. 안 뽑았다고 하면 안 돼. 우리가 뽑은 거야. 그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해요.

이명박씨를, 노무현씨 1주기지만 나는 노무현씨를 조롱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새만금에 가서 날 죽여라 데모하는데. 왜 새만금 막았어. 새만금만 텄어도 4대강 왜 자기가 나서서 FTA 무덤에 가서도 반성해야 한다. 진보세력에게 기회를 준 것이에요. 노무현 대통령되기 직전까지 어렵다고 했어요. 그런데 됐어요. 우리 국민은 아주 정의로운 선택을 한 거예요. 결국은 자기의 비전을 바르게 가지고 있었는데 위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개발하고 진보세력들을 근본적으로 무산시켰어요. 이런 결과가 오게 된 것이에요.

문제는 이 땅의 지도자가 없다. 노무현 시대에 정치한다고 껍적거리던 사람이 다형편없다, 빨갱이라고 불안하다 이런 사람들은 이제 빨갱이들 다 짤라 버리고, 보수 세력들은 뭔가 정치를 해도 얼굴에 개기름 좀 흐르고 폼 나는 사람들이 아니냐. 노무현처럼 경박하게 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니미 정치가 잘 돌아가긴.

진보가 잘못됐다고 한다면 그래도 보수가 뭔가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보수는 더 형편없더라. 이승만부터 내려오는 보수의 물줄기들이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지 않냐. 그래서 근사한 사람들이 또 나올 줄 알았지. 니미 근사한 놈이 어디 있어.

그러면 문제는 진보도 형편이 없었고 그래서 국민들의 실망감에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고, 다 지금은 보수도 더 형편없어. 이 세계를 진보 보수로 나누자면 진보와 보수에게 다 기회를 다 줬는데 국민의 허탈감 자괴감 비감만 남았다.

6.25 직전에도 이렇게 안보리 들어가고 전쟁. 그 뒤로 월남전이 터졌고. 이라크 전쟁 터지고. 그런데 또 다시 돌고 돌아서 또 한국전으로 와. 여러분들은 전쟁을 원하는가. 이게 지금 우리 민족이 원하는 것인가. 자 군인들이 장성들이 앉아서 발표하면서 이것은 전부 빨갱이들이 한 짓이다. 프로펠러를 돌려서 이렇게 와서 빵 터지면. 웃기는, 세상에 그런 이상한, 북한이 그 정도 기술이 있다면 미국 해군 군사력이 총집결해 가장 프라이드를 가진 이지스함이 두 대나 있었고 서해 근해에 13척의 함대가 있었다는데 거기를 뚫고 들어와서 뻥. 이것은 진짜 웃기는 개그올시다.

"위정자들의 기만에 속지 말고 코뿔소의 외뿔처럼..."

최근에 사고분서에 원본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도마복음이라는 것을 세계최초로, 최초는 아니더라도 본격적으로 방대하게 역주를 했습니다. 저 밑에 책이 와 있나 본데. 사인 해드릴게요. 이것을 세권을 도마복음 역주라는 책으로 세권을 냈다. 방대한 규모다. 마태 마가요 4복음. 복음서라는 복된 소식이다. 이 복음서의 이 복음서에 그 이마가라는 분은 예수를 가지고 드라마를 썼다는 것이에요. 대장금 드라마. 이런 식으로 드라마를 썼는데 예를 들면 부처님의 대열반정 드라마로 되어 있어요. 드라마 사이에 예수님 말씀이 끼어 있다. 예수 가라사대, 3인칭 서술이죠. 그런 것은 내러티브라고 해요. 여기서 '가라사대'라고 나온 부분만 들어내면 예수의 어록이 되죠.

복음이 쓰이기 전에 어록만 모아 놓은 어록자료가 있다고 신학계에서 가설을 세웠다. 그것을 근거로 예수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이집트에서 그 어록자료가 나온 거예요. 한국 교회에서는 쉬쉬하고 있어요. 신학자들이 이걸로 많이 박사를 했는데 그래서 제가 쉬쉬하는 거에 반대로 크게 떠들었다. 그래서 이 자료는 원래 이런 코트어라고 해서 고대 이집트어로 쓰였다. 이집트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 이것을 보면, 놀라운 것이 4복음서의 원형이 되었다. 이게 자료가 문제되는 게 외경이 아니란 말이야.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말씀의 원형이 들어있단 말이야. 여러분들이 비교해보면 알 수 있어.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가 기독교와 불교를 놓고 봤을 때 불교를 일종의 사이콜로지 이런 걸로 봐도 되요. 너의 마음이 해탈해야 한다. 너의 깨달음 자각의 문제예요. 각성의 문제에 있어 명진 스님과 저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불교는 대승불교, 대승불교는 탐욕적인 게 들어가죠. 나무아미타불만 외도 해탈을 할 수 있다던가. 탑돌이 한다는 가 이런 게 있는데 불교는 기본이 뭐냐면 자력 신앙이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내려왔고, 예수를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얻는다 했으니까 이것은 완벽한 탐욕신앙이죠.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거기다 공갈협박을 첨가 했던 거야. 그게 종말론이야. 예수가 부활을 했는데 땅에서 그냥 살지 또 올라가버리셨어. 며칠 있다가 다시 승천했었는데. 왜 그 부활을 이야기 하냐면 부활예수가 다시 재림하신다. 재림의 순간을 기다려라. 재림의 순간에 이 우주가 끝난다. 새로운 시간이 된다. 예수를 믿었던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는다. 이게 종말론적 협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당대 로마사회에 있어서 현실부정의 논리를 줬어요. 당대에는 나쁜 것만이 아니야. 어차피 끝나는 것인데 이것은 곧 끝날 거다. 집착하지 마라. 이게 바울의 논리죠.

바울의 십자가는 종말하고 연결되어 있다. 종말론의 가지고 예수는 바울에게 있어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아담은 원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렀는데 사망의 원인을 예수는 십자가에서 부활하며 극복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종말의 그 순간에 너희를 구원한다. 그 때까지 현세의 집착하지 말고 교회로 와서 살아라. 이렇게 해서 초대 교회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바울은 아주 천재예요 천재. 바울 보면 "형님 존경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전략이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것. 로마 황제를 지원하는 황제교로 변해요.

그러한 상황에서 이렇게 기독교 운동이 전개됐지만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가 구세주라고 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기를 생각하지 않아요. 제자들이 당신은 누구냐. 우리가 당신을 믿고자 하니 당신이 누구신지 이야기해 달라.  어리석은 녀석들아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전하는데 내가 하는 말로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느냐. 천국이 저 하늘에 있다면 저 하늘을 나는 새가 너희보다 먼저 천국에 가리라. 저 땅속에 물속에 천국이 있다면 저 물속에 물고기가 먼저 천국에 갈 것이다.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 참 이해가 안 돼요. 천국은 내 마음의 문제지만 마음과 마음속에 공동체에 있는 것이에요. 바로 이게 천국이죠. 여러분들 얼굴 보세요. 이게 천국이에요. 지금 성경에는 구하라 그럼 주실 거다. 이것은 대승적인 것이죠. 하나님이 다 준다. 도마복음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 않아요.

구하라 발견할 때까지 구함을 멈추지 말라. 끝까지 네 자력으로 구하라. 구함을 발견했을 때 고통스러울 때 너희는 경이로울 것이다. 경이로울 때 너희는 진실로 너 자신을 다스릴 것이다. 이 도마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는 한 마디도 쓸모없어요. 기적을 행한다던가, 내가 죽어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거나, 나 주예수를 믿으라거나, 하나님의 아들이고 종말이 온다는 말이 없어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느낌처럼 절대적인 사랑은 없다. 우리가 받아왔던 그 절대적인 사랑 추상적으로 절대화 시켜 '아빠야'라고 불렀다. 하나님이란 말을 안 써요. 아버지라는 말만 했어요. 하늘나라는 말 안 쓰고 아버지의 나라, 또는 나라는 말만 써요. 이 예수는 너무 점잖아요. 그러고 진실하고 무게가 있고 말 한마디가 무게가 있어요.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 이거야. 어려서 부터 평생 품어오던 갈등, 기적이니 뭐니 이런 문제 싹 해소가 됐어. 여태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를 "저 자식 대단한 기독교 집안에서 나와서 신학대학까지 가서는 저러니 저건 진짜 길 잃은 양이야" 그러는데 나는 매일 "누가 길 잃은 양이야"

길 잃은 양의 원본이 여기에 들어 있어요. 원문을 보면 예수의 비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똑같은데 토씨 하나만 바뀌면 어떻게 변하나 보세요.

100마리의 양이 있었는데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었다. 목동이 99마리를 두고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 그 한 마리를 발견했을 때 기뻤다. 이 이야기죠. 도마복음에 보면 똑 같이 나와 있어요. 토씨가 몇 개 다르고 형용사가 조금 달라요. 100마리 양이 있었다. 한 마리의 크고 아름다운 양이 있었다. 99마리하고 비교가 안 되는. 그런데 이 양이 무리를 떠났다. 그래서 그 목동이 그 양을 찾아 떠났다. 그 양을 찾았을 때 그렇게 기뻤다. 길 잃은 양이 아니라 길 떠난 양이죠.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해. 한명이라도 끌어 모아야 하는데 한 마리도 길 잃은 양은 목자의 관심 이렇게 해석해야해. 한 새끼라도 이탈이 되면 안 돼.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떠나라'. 아브라함도 떠났고 이삭도 떠났고 끊임없이 떠나는 종교였어요. 오늘날에도 예수는 '떠나라' 그 세속적인 것을 떠나야 한다. 강의석군이 그렇게 했잖아요. 정의롭잖아요. 거기 교목이 그 학생을 도와 같이 떠났죠. 한 마리 양이 떠났어요. 그것을 다시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같이 떠나는 거야. 명진 스님이 해인사를 떠나라 하실 때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바람과 태양의 뜨거움, 모기떼와 독사를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불타의 가장 고유한 말씀을 전하는 말씀이죠. 어깨가 딱 벌어져 거대한 코끼리가 그의 무리를 떠나가고 싶은 데로 숲속을 누리는 것처럼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철학자들의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나의 길이 생겼다. 누구에게도 다시는 끌려가지 않겠다며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탐내지 말라, 속이지 말라, 갈망하지 말라, 저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리지 말라. 혼탁과 미망을 벗어 던지고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자비와 평등과 연민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세간의 모든 것을 저버림 없이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탐욕과 혐오와 미망을 버리고 마음의 속박을 다 떠나보내라.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 말고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가라.

자 예수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제 42장 방랑하는 자가 되라. 가장 위대한 도마복음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이 세계를 어떠한, 지금 불교라고 하는 것은 코뿔소라는 거예요. 어둠과 빛, 여자와 남자,  해탈과 지옥, 모든 게 이원화 되어 있거든요. 코뿔소는 뿔이 하나잖아요. 그 이원적 세계가 하나의 상태가 되어 있어요. 외뿔의 상징이 그런 것이에요. 도올은 혼자 간 사람입니다.

봉은사에 이런 말씀을 드릴게 너무 많다. 우리는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위정자들의 기만에 속지 말고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야할 시기다.

우리가 북한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법구경을 펼치니까 이런 말이 있어요. 미움은 진실로 미움을 미움으로 정복되지 않으니 미움은 오직 미움이 사라진 사랑으로서만 정복된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다. 원수를 사랑하라. 기독교의 정신이 뭐에요.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대라. 이게 예수야. 이게 마태보음과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네 겉옷을 뺏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 줘라. 물은 네가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 것을 가져간 자에게는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하라. 이게 성서에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명박 장로님께서는 이러한 성서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이 시점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대자대불, 아가페적 사랑, 남북의 화해, 입니다.  북한은 할 수없이 남한에게 몰리니까 중국에 붙어서 비굴하게 살아야 하고 우리는 점점 미국에 예속되어 한반도가 아니라 분열되고 찢겨져 남아 있는 조그만 섬이 된다.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드라마 같은 소설을 쓰며 그 순간에 국민의 몇 십조나 되는 세금을 강바닥 처넣는 도대체 용납할 수 없는 이 비루한 세력에.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겐 기나긴 밤이여 지친 나그네에겐  머나먼 이 길이여 불멸의 길을 찾지 못한 어리석은 이에겐 너무나 길고 지겨운 이 삶이여. 삶의 기나긴 여행길에서 나보다 나은 이나 나와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거라.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백 년 동안을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명상과 축복 속에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니르바나, 저 불멸을 알지 못한 채 백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니르바나, 저 불멸을 깨닫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우리가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라도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정말 깊게 깊게 생각하시고. 제가 여기서 말한 것이 앞으로 어떤 박해를 받게 될지 몰라요. 내가 명진스님때문에 감옥에 갈지 몰라. 너무도 할 말이 많은데 여러분들이 너무도 제 말씀을 잘 들어주셨기 때문에 제 평생에 잊지 못할 위대한 법회요, 제 강의로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제가 어제 밤에 세시까지 책을 보다가 잠이 오기 직전에 시를 하나 썼어요. 이 시를 읽으며 강의를 끝내겠습니다. 제 인생의 처절한 심정을 숨김없이 그려 놓은 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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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몇 일?---- 정답은 며칠

아래는 http://skyfac.com/105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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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의 뜻은 다음과 같다.

[Ⅰ]「수사」

    * 「1」((흔히 사람을 뜻하는 명사 뒤에 쓰여))그리 많지 않은 얼마만큼의 수를 막연하게 이르는 말.
      ¶ 아이들 몇이 더 왔다./이 문제는 너희들 몇의 문제가 아니다./정 씨는 승식이와 배 영감, 장 영감과 동네 사람 몇과 뚝방 아래 공터로 갔다.≪황석영, 어둠의 자식들≫/훈은 버들개지 몇을 따 가지고 아랫목으로 가, 배를 깔고 엎드렸다.≪황순원, 카인의 후예≫/모든 샘이 이번 비로 말미암아 터져서 개울가에 있는 집 몇은 집채같이 흘러 내려오는 물로 인하여 혹은 떠내려가고 혹은 무너졌다.≪김동인, 약한 자의 슬픔≫
    * 「2」((주로 의문문에 쓰여))잘 모르는 수를 물을 때 쓰는 말.
      ¶ 나이가 몇이고 형제가 몇이냐?/2에다 3을 더하면 몇이 됩니까?/오늘 회의에 참석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빨리 파악해라.

[Ⅱ]「관형사」

    * 「1」뒤에 오는 말과 관련된, 그리 많지 않은 얼마만큼의 수를 막연하게 이르는 말.
      ¶ 친구 몇 명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귤 몇 개만 사 오너라.
    * 「2」((흔히 의문문에 쓰여))뒤에 오는 말과 관련된 수를 물을 때 쓰는 말. ¶오늘 집에 몇 사람이 찾아올까?/나이가 몇 살이냐?

【몇<용가>】

  '몇년', '몇월'과 같이 며칠을 '몇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는 현재 맞춤법 규정상 틀린 말이다.한글 맞춤법 제27항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리거나 접두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규정을 근거로 삼아 '몇일'로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항의 [다만 2]에서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않는다"라고 하고 '며칠'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즉 한글 맞춤법에서는 '며칠'의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여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1) 친구가 몇이나 모였니? [며치나]
아이들 몇을 데리고 왔다. [며츨]

(2) 지금이 몇 월이지? [며둴]
달걀 몇 알을 샀다. [며달]

(1)에서 보듯이 '몇'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면 '몇'의 말음 'ㅊ' 소리가 조사로 내려져 [며치나], [며츨]로 소리 난다. 하지만 (2)와 같이 '몇' 다음에 명사가 오면, 말음의 'ㅊ'이 중화 현상에 의하여 대표음인 'ㄷ'으로 소리가 난다. 그러므로 [며춸], [며찰]이 아니라 [며둴], [며달]로 소리 나게 된다. 이는 '옷+안, 낱+알'과 같은 합성어가 [오산], [나탈]이 아니라 [오단], [나달]로 소리 나는 것과 같은 음운 현상이다.

만약 '며칠'이 '몇+일'의 구성이라면 '일(日)'이 명사이므로 [며딜]로 소리 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며칠]로 소리가 난다는 것은 '며칠'을 관형사 '몇'에 명사 '일'이 결합한 구성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며칠]로 소리를 내는 이 단어는 그 원형을 밝혀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며칠'로 적게 되는 것이다.

'며칠'은 '그 달의 몇 째 되는 날'과 '몇 날(동안)'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두 의미를 구분하여 '몇 일'과 '며칠'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잘못이다. 두 경우 모두 [며칠]로 소리 나므로 둘 다 '며칠'로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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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 요약
1. 몇일, 몇 일은 틀리고 며칠이 맞다.
2. 몇일이 맞을려면 발음이 [며딜]이 돼야 한다.
3. 며칠의 어원은 몇일이 아니다. 어원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유시민, 김문수에 관한 아주 짧은 기억 하나


유시민과 처음 눈이 마주친 것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의료 전문지 복지부 출입기자였습니다. 그 날은 처음으로 장관이 전국의 각 시도별 의사회장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유시민을 만나기 전 의사들의 결기는 대단했습니다. 직전 총선에서 유시민은 의료계에서 "의료 5적"으로 찍힐만큼 적대적이라는 평을 얻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복지부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의사들은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의사들은 "본때를 보여주겠다" "아주 혼쭐을 내주겠다"고 별렀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시행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습니다. 

유시민은 당시 "돈이 들지 않는 한 의사들이 원하는 모든 정책에 동의해 주겠다. " "의사들의 잘못된 사회적 대우에 대해 제대로 되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복지부의 정책에 대해 의사단체에서 먼저 협조해 주고 이를 기반으로 약사단체의 협조도 얻어낼 것이고 제약회사의 동의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의사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도라고 들어온 사람이 칼 들고 뭐든 다 내놔라 한다면 한 집의 가장으로서 멋지게 덤벼들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데 강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번만 살려줍쇼"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의료계 지도부는 장고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협 회장이었던 인물이 개인적인 잘못으로 의료계 전체의 돌을 맞기 시작하면서 그날의 약속은 점차 유야무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유시민은 다만 파트너를 잘못 만난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의료계는 지금의 잘못된 정책들을 제대로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당시 의료계가 요구했던 많은 정책들은 친 의료 정부라고 할 수 있는 현 정권이 들어선 지금도 그대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후 의료계는 그런 정책들을 복지부 장관에게 직접 요구해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나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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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만호 회장등 지도부, 유시민 장관 면담"
 
 의협 장동익 회장과 경만호 서울시의사회장을 비롯한 의료계 지도부는 7일 보건복지부를 방문, 유시민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약제비 절감을 위한 포지티브 리스트제도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유시민 장관은 7일 오후 의사단체 지도부를 초청, 간담회를 갖고 포지티브 리스트와 관련한 정책추진방향을 설명한 뒤 의료계의 협조를 당부했다. 유장관은 이 자리에서 “제도 시행에 따라 절감된 비용은 합리적인 수가체계로의 이행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장동익 의협회장은 이에대해 “불용재고약 처리를 위해 의협차원에서도 처방 리스트 작성 등 큰 틀에서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경만호 회장은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와 관련, “개인적으로는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전제한 뒤 정부에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제도인 만큼 합리적인 제도시행 및 추진에 힘써달라고 강조했다. 경회장은 이어 “혹 이 제도가 성분명 처방으로 가는 수순밟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최소한 성분명처방이나 대체조제 금지와 위탁생동성검사 금지 등의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고 조건부 수용입장을 밝혔다. 경회장은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 도입 과정에서 심평원은 경제성평가부을 신설했으며, 건보공단은 약가협상부서를 만들었다”며 “역시 의협의 몫은 없다”고 해당 위원 배정의 합리적 조정을 건의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장동익 의협 회장, 유희탁 의협대의원회 의장, 경만호 서울시의사회장, 박희두 부산시의사회장·이창 대구시의사회장 등 전국 시도의사회장 다수가 참석, 보건의료정책현안에 대해 밀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강봉훈
"

2006-07-07 00:00:00
당시 이 기사를 쓴 저도 의료계를 대변하는 신문의 기자의 입장으로서 회의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할 수 없는 난감한 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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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직접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아주 진한 악연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경기도지사로 처음 출마한 지난번 지방선거때였을 것입니다. 당시 나는 지방선거에는 관심도 없고 더구나 내가 사는 지역도 아닌 경기도의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그에게 관심을 가질리는 더욱 만무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진한 인상을 갖게 한 일이 터졌습니다.

어느날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boney00님. 네이버 게시중단요청서비스 담당자입니다.

"김문수와 이재오............... (http://cafe.naver.com/newseoul/849)"
고객님께서 작성하신 위 게시물에 대해 김문수 측으로부터 5월 29일 명예훼손 사유로 게시중단요청이 접수되었으며
이로 인해 고객님의 게시물이 임시게재중단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는 김문수 측의 요청에 의한 조치일 뿐 고객님의 게시글이 부당하거나
불법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략

글의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큰 문제가 있었나 싶어 지워진 글을 보내달라고 네이버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통보만 받았습니다.

나중 기억을 되살려 찾아낸 내용은 김문수와 이재오의 '변절'에 대해 쓴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스크랩하고 제 의견을 살짝 붙인 것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boney00/70004852177

물론 김문수가 직접 게시중단 요청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막 시작되는 마당에서 자신에 대한 불리한 인터넷 자료들을 지우기 위해 어떤 팀을 운영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쓴 글에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 도지사로 나서면서 이런 식으로 인터넷 검열을 먼저 시작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떳떳해 보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