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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을 깎아 이뤄낸 전탑과 목탑의 완벽한 조화
모전석탑이란 돌로 벽돌탑 모양을 흉내낸 탑.
(경주 분황사탑, 제천 장락리 7층탑, 음성 5층 탑 등)
▣ 지정번호: 국보 제77호
▣ 소재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동
▣ 시대: 통일신라 전기
▣ 크기: 높이 9.6m
매우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햇살의 따스함보다도 아직 남아있는 공기의 찬 기운이 더 느껴지는 날이었다.
안동에서 출발, 잠깐 새 큰 길에서 빠져 왕복 2차선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높은 고개를 지나는 것도 없고 완전한 평야지대도 아니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달리던 길이 잠깐 너른 지대로 접어드는 순간, 마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 바로 의성 탑리, 금성면의 면 소재지였다.
탑은 마을 맨 안쪽, 여중학교와 바로 울타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탑리 5층탑은 한눈에 아주 잘 생긴 탑이라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미끈한 화강암 탑(석탑)들이 주는 세련함에 비해 대체로 전탑이나 모전탑은 잘생겼다는 느낌을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건물의 지붕 부분에 해당하는 '낙수면'이 마치 계단처럼 생긴 것이 모전탑의 특징이다.
하지만 탑리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생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얇은 지대석 위에 기단부는 1층, 감실을 둔 1층 탑신의 문은 열려 있었고 5층의 옥개석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상륜부는 유실됐고 후대인들이 얹었음직한 뭉툭한 돌이 올려져 있었다.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만한 경주 석가탑이후 2층 기단이 주를 이루는데 기단이 1층으로 비교적 얇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써 석가탑보다는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분황사 탑보다는 훨씬 정형에 더 가까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초기를 추측되는 듯 하다.
탑의 가장 큰 특징은 낙수면을 전탑처럼 계단식으로 조성했다는 것과 동시에 기단부와 탑신부의 모서리를 마치 목조건축물의 기둥처럼 그대로 재연해 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탑신부의 기둥(우주)은 마치 사포로 다듬은 듯이 매끈하게 처리돼 있고 눈에 띠기 어려울만큼 살짝 엔타시스를 가미해 안정감을 더했다.
특히 탑신부의 기둥머리와 이를 받는 창방은 매우 부드러운 선으로 다듬어져 마치 화강암을 목재를 다루듯이 정성을 들였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해 특히 훼손이 많이 돼 있어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목조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있었다. 바로 처마의 선이었다. 처마의 아래쪽 선은 거의 완벽한 직선이었지만 윗쪽 선은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조금씩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은 안정감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지나치게 뾰죽하면 안정감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납작하면 자칫 세련미가 떨어질 수 있는대 규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석가탑보다도 후에 나온 탑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탑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설명은 클릭...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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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을 깎아 이뤄낸 전탑과 목탑의 완벽한 조화
모전석탑이란 돌로 벽돌탑 모양을 흉내낸 탑.
(경주 분황사탑, 제천 장락리 7층탑, 음성 5층 탑 등)
▣ 지정번호: 국보 제77호
▣ 소재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동
▣ 시대: 통일신라 전기
▣ 크기: 높이 9.6m
매우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햇살의 따스함보다도 아직 남아있는 공기의 찬 기운이 더 느껴지는 날이었다.
안동에서 출발, 잠깐 새 큰 길에서 빠져 왕복 2차선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높은 고개를 지나는 것도 없고 완전한 평야지대도 아니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달리던 길이 잠깐 너른 지대로 접어드는 순간, 마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 바로 의성 탑리, 금성면의 면 소재지였다.
탑은 마을 맨 안쪽, 여중학교와 바로 울타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탑리 5층탑은 한눈에 아주 잘 생긴 탑이라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미끈한 화강암 탑(석탑)들이 주는 세련함에 비해 대체로 전탑이나 모전탑은 잘생겼다는 느낌을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건물의 지붕 부분에 해당하는 '낙수면'이 마치 계단처럼 생긴 것이 모전탑의 특징이다.
하지만 탑리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생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얇은 지대석 위에 기단부는 1층, 감실을 둔 1층 탑신의 문은 열려 있었고 5층의 옥개석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상륜부는 유실됐고 후대인들이 얹었음직한 뭉툭한 돌이 올려져 있었다.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만한 경주 석가탑이후 2층 기단이 주를 이루는데 기단이 1층으로 비교적 얇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써 석가탑보다는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분황사 탑보다는 훨씬 정형에 더 가까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건립 시기는 통일신라 초기를 추측되는 듯 하다.
탑의 가장 큰 특징은 낙수면을 전탑처럼 계단식으로 조성했다는 것과 동시에 기단부와 탑신부의 모서리를 마치 목조건축물의 기둥처럼 그대로 재연해 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탑신부의 기둥(우주)은 마치 사포로 다듬은 듯이 매끈하게 처리돼 있고 눈에 띠기 어려울만큼 살짝 엔타시스를 가미해 안정감을 더했다.
특히 탑신부의 기둥머리와 이를 받는 창방은 매우 부드러운 선으로 다듬어져 마치 화강암을 목재를 다루듯이 정성을 들였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해 특히 훼손이 많이 돼 있어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목조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있었다. 바로 처마의 선이었다. 처마의 아래쪽 선은 거의 완벽한 직선이었지만 윗쪽 선은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조금씩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은 안정감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지나치게 뾰죽하면 안정감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납작하면 자칫 세련미가 떨어질 수 있는대 규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석가탑보다도 후에 나온 탑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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