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본 가장 아름다운 민속촌 성주 한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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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내 인근 성주 한개마을

성주는 역시 알려진대로 참외의 마을이었다. 들녘은 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이 밭이었다. 또 밭의 대부분은 비닐하우스로 덮여있었다. 물론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보나마나 대부분 참외밭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해준 안내 아주머니의 설명대로 마을은 한 눈에 보기에도 명당이었다.



야트막한 안산이 마을 뒤쪽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좌청룡 우백호가 좌우로 지켜주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머지 않은 곳에 배가 다닐 정도의 내가 흐른다고 하니 배산임수까지 갖춘 지형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은 날은 날씨까지 봄빛이 따뜻한 날이어서 그 오붓함인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정번호 중요민속자료 제255호
지정연도 2007년 12월 31일
소재지 경북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일원
시대 조선시대
면적 843,714㎡




마을은 말 그대로 전통 양반촌이었다. 보아하니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기와 지붕이나 토담길을 수리, 복원하는 것 같았다. 대체로 단정하게 잘 정돈돼 있었고 요란스럽지 않았다. 마을 위쪽으로 갈 수록 큰 집이 많았고 집의 배치도 복잡해졌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이 나오고 다시 대문이 있어 안채와 연결됐다. 또 다른 쪽으로는 또 다른 입구가 있어 본채와 쪽문으로 연결됐다. 아마도 자식들이 분가를 하면서 이웃에 집을 지어 주고 쪽문으로 연결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아직 관광단지로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정책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지 각종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 등이 하나도 없어 구경하는 사랑의 기분을 헤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본 어떤 민속촌이나 전통마을보다도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정말로 한 번 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을의 기념할만한 종택들을 대부분 '하회댁' 등의 택호를 가지고 있었다.

택호란 것은 말 그대로 집에도 이름을 붙였다는 것인데 사람을 부를 때는 보통 안주인을 부를 때는 그냥 택호를 부르고 바깥주인을 부를 때는 ㅇㅇ양반, ㅇㅇ어른하는 식으로 불렀다. 이것이 말 그대로 존칭이 됐다.

택호를 붙일 때에는 보통 벼슬이 있을 때는 벼슬을 따서 '진사댁' 등으로 불렀고 벼슬이 없을 때에는 처가의 고향을 따라 (보통 면 단위) 붙였다.

한개마을에는 진사댁, 교리댁, 북비고택, 월곡댁, 하회댁, 극와고택, 한주고택, 북비고택, 한주종택 등이 있었다.



마을 맨 뒤쪽 한주종택의 사랑채는 누구나 한 번 앉으면 시 한 수 쯤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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