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은 소백산맥을 넘는다?




지난 6월 24일, 강원도 태백을 들렀습니다. 수년 전에 가족 여행을 겸해 지나가는 길에 태백을 지나기도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 큰 길만 구경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번에는 태백에서 일박을 했습니다.

태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제 머리 속에는 우리나라 가장 산골짜기 도시로 인식돼 있습니다. 이번에 찾아가 보니 역시 태백은 산골짜기 도시가 맞았습니다.

태백은 이미 산골 마을인 경북 봉화에서 찾아가는데도 높은 고개길을 고불고불 한참을 돌고 난 후에야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백에서 먼저 눈에 띤 것이 '황지'라는 연못입니다. 그리고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설명돼 있었습니다. 언뜻 머리 속에서는 '무슨 전설 같은 것이 있어서 실재 낙동강과는 많이 떨어진 이곳을 발원지로 삼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강의 발원지라면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것도 영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상도에서 높디나 높은 고개를 넘어 왔는데, 강원도 태백과 경상도 사이에는 높은 소백산맥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경상도를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강원도 태백에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 사실보다는 정치적, 역사적 이유가 있을 것으로 거의 확신했습니다.

황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마치 경유의 색깔처럼 푸른 빛을 띤 물이 담겨 있는 크지 않은 연못이었습니다. 연못 가운데에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엄청 많은 물이 샘솟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솟은 물은 태백 시내를 관통하는 개천(황지천)으로 흘러드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들어오자 다음 지도에서 황지천이 진짜로 낙동강으로 흘러가는지 확인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서쪽으로 흘러서 한강으로 합류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황지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으로 알려진 추전역 인근의 두문동재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말랐습니다. 물이 고개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쪽으로는 당연히 넘지 못할 것 같은 높은 고개를 따라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31번 국도를 따라 봉화에서 넘어오는 고갯길 내내 옆에 내천을 끼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는 끊겼을 것으로 생각했던 물줄기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지형상으로만 말하자면 태백은 경상도와 연결돼 있고 산맥은 태백시의 서북쪽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는 태백시 북서쪽의 작은 산 하나 건너에 있었습니다. 이 검룡소와 황지를 나누는 산맥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백두대간의 정기를 잇는 줄기임에 틀림 없으며 그 줄기는 사북, 정선과 태백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만 인간이 만든 행정구역이 태백을 강원도로 분류했을 뿐인 것입니다.

수년 전 들렀던 태백은 어쩐지 쇄락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도시에 활기도 없었고 우중충한 느낌마저 강하게 풍겼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 화려함이나 깔끔함이 완전히 관광도시로 변모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어쩐지 자신감 있어 보였습니다. 부유하진 않지만 세상에 빚진 것 없는 중산층들에게서 느껴지는 당당함 같은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백에서 제천쪽으로 연결되는 38번 국도는 완전히 고속도로에 못지 않은 만큼 잘 닦여 있었습니다. 지난번 방문때에는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경치를 즐기며 드라이빙할 수 있는 코스였는데 새로 닦인 길은 거의 롤러코스트를 탔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 이상의 짜릿함을 줄 만큼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스팔트로 된 스키장을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태백을 찾아가는 길은 편해졌지만 전에 니낄 수 있었던 아름다움은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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