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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불 관련 기사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불장난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 겨울이면 눈썰매를 타는 일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야트막한 오름 하나를 끼고 있는 우리 마을은 특히 특혜를 입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이 내리는 날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눈이 내려도 쌓이기 전에 녹아버리기 일쑤였고 쌓여도 골고루 쌓이는 것이 아니라 심한 바람으로 인해 특정 지역(담벼락 뒤)에만 쌓이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마을 뒷산은 눈이 내리면 언제나 눈썰매를 타기에 좋았습니다.
지금 스카이맵에는 나무들도 많고 무덤들도 많이 들어섰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소먹이는 꼴을 베는 곳이어서 가을에 꼴을 베고 나면 잔디밭 이상으로 바닥이 골랐습니다.
비료 포대에 눈이나 짚을 담고 아침부터 눈썰매를 타면 두어시간 후에는 옷이 흠뻑 젖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눈 썰매장 바로 아래 쪽에 위치한 굴을 찾아 갑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아마도 일제시대에 대공포격용으로 판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그 굴을 암빵굴이라 불렀는데 그 굴에 가서 불을 피우고 인근에 있는 밭에서 고구마를 주어다가 구워먹거나 꿩을 주어다 궈먹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끔씩 독을 탄 콩이나 보리 등을 뿌려 꿩을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운이 좋은 날에는 그중 하나를 먼저 얻는 행운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또 놀고 나면 옷은 대충 마르지만 오히려 이제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옷에 숯검댕을 뭍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혼날 일만 생각하며 우울한 마음으로 오름에서 내려와야 했죠.
그런데 보통은 거기쯤에서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는...
꼭 사고치는 것을 좋아하는 형이 있어서 막대기 하나를 주워서 비닐을 돌돌 말아 불을 붙여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고 오던 불을 산 정상쯤에서 소복이 쓰러져 있는 억새 덩굴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커지기 전에는 재미있습니다. 소나무 가지 등을 꺾어 두드리면 한 번에 꺼집니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재미 없는지 조금 더 번지기를 기다려면 거기서 사단이 납니다. 불은 삽시간에 제어 불가능한 지경으로 커지고 아이들은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그래도 형들은 의협심이 있어서 어린 우리들을 먼저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고 자기들 끼리 불끄기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내려가서 어른들에게 알리고 어른 몇명이랑 함께 오름 꼭대기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억새 덩굴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억새라는 풀이 확 붙을 때에는 큰 불이 날 것 같지만 순식간에 사그러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뒤라 다른 곳에는 옮겨 붙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산불을 낼 뻔한 추억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불의 이런 특성을 모르면 큰일이 난다는 것입니다. 온 천지가 억새로 둘려쌓여 있는 산에 불을 놓으면 산 전체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게다가 억새가 바싹 말라 있었고 3년 동안 자란 억새이고 게다가 바람이 불어준다면 불은 춤을 춥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버리고 맙니다.
예측 못한 바람이 불었다며 자연재해로 몰고 갈려는 발언은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했던 불장난보다도 더 욕먹을 짓입니다. 수만 명이 모여드는 축제에 의레 바람이 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것이 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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