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질 수술기

지난 추석 마지막 날...

친구와 과도하게 술을 푼게 원인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는 단 3일로 짧았다. 고향이 제주도인 나는 안타깝게도 연휴기간 내에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예약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하루 더 휴가를 내고 연휴 다음날 올라오는 편을 예약했다.

추석 다음날, 그러니까 연휴 마지막날, 고향 마을에서는 동네 체육대회가 열렸다.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한바탕 축제 마당이 마련된 것이다.

작은 마을 내에서도 다시 동별로 치러진 그날 체육대회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마을인 우리 동네가 한 10년여만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극적으로 축구 우승에 이어 2인3각 릴레이 달리기까지 우승을 차지하면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잔치는 끝났다. 하이라이트는 잔치 이후 이어진 경품 추첨... 우리 가족들은 경품 추첨에서 자전거 한대와 비료 10포대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번 추석은 그야말로 축제 속에 끝났다.

축제가 끝난 뒤 고향 마을에서 애꿎은 일을 도맡아 하는 동창생 녀석을 찾았다. 그 친구는 마을 이장님과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작은 맥주였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온 뒤 소주 서너병이 비워져 나갔다.

더 이상은 기억이 없다. 아내 말에 의하면 내 평소 모습과 달리 엄청난 속도로 술잔을 비웠으며 친구가 돌 아간 뒤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화장실에서는 위로 한번, 아래로 한번... 어떤 때는 한번 가면 수십분씩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다음날 역시 사단이 났다. 도저히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내게 치질은 사실 오래된 병이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는 줄곧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중간에 몇번은 변을 보다가 시뻘건 피가 쏟아진 적도 있었다. 워낙 병원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그래도 병원 한번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그냥 지나갔다.

어떤 때는 항문 밖으로 두툼한 것이 돌출된 것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손으로 살살 눌러주면 쏙 들어갔다.

하지만 언제부턴간 그냥 살만했고 통증을 심하게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2년 전부터 비데를 설치하고서는 비데를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경품으로 탄 자전거를 가져와보려 했지만 비행기에 싣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정신이 났다면 어떻게 했을 텐데 만사가 다 귀찮았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도착하자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잠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였다.

다음날, 출근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옷을 갖춰 입고 조금만 괜찮다고 한다면 일단을 출근을 한 후 조퇴라도 해서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찾은 곳은 석계역 인근의 항문 전문병원.

하지만 의사는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며 당장 수술을 권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수술이었다. 아내는 입원을 위해 집에 준비를 하러 가고 나는 입원실에서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날 밤부터는 아무 것도 먹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그것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12시 30분 쯤 수술은 시작됐다. 척추마취를 한다고 했다. 엉덩이 바로 위쯤에 있는 척추 마디 사이로 주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하반신이 조금씩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묵직해진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더니 의사가 수술을 시작한다고 했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슥삭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는 머리맡의 게이지가 같이 올라갔다. 아픔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몸은 반응을 하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문득 느낌만 없는 것인지, 움직일수도 없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봤다. 하지만 내가 움직였는지 안움직였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기를 30분. 수술은 끝났다. 수술 전에는 걸어 올라간 수술대에서 내려올 때는 굴려져서 내려왔다. 하반신이 마치 남의 몸처럼 털거덕하도 따라 내려왔다. 침대를 타고 수술실로 돌아왔다.

바로 무통주사가 매달렸다. 마취는 서너시간만에 풀렸다. 특별하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다만 지루한 것과 배고픔이 괴로웠다.

입원 첫날을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대변을 봤다. 설사는 아니지만 묽은 변이 나왔다. 아마도 약을 먹어 그런 것 같다. 변을 보는데도 따끔한 정도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변을 본 뒤에는 따뜻한 물을 받아 좌욕을 했다. 배고픔이 심했다. 어린시절부터 일찍 자취를 해서 배고픔은 익숙하지만 만 이틀을 내리 굶어보기는 처음인듯 했다. 이튿날 저녁부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국물 한방울 안 남기고 깨끗이 비웠다. 무통주사를 뺐다. 통증이 오면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세째 날. 약간의 통증이 있어서 주사를 맞았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퇴원을 했다.

퇴원 후 두어 번 정도 더 병원에 가야 했고 크게 아프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며칠간 좌욕을 더 했다. 무엇보다 진물이 계속 흘러서 거즈를 대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 퇴원하는 날이 금요일이어서 토, 일 이틀을 더 쉬고 출근할 수 있었다.

출근 첫날까지는 의자에 그냥 앉을 수가 없어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방석을 깔고 앉았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거즈 대신에 아내의 생리대를 썼다. 훨씬 편했다. 그래도 몇주가 계속되다보니 엉덩이 한 쪽이 헐었다. 무엇보다 엉덩이에 살이 없는 내 몸이 문제인듯 했다. 하루에 서너번 이상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다.

수술 이후 바뀐 것들
1. 내 똥꼬가 그렇게 엉덩히 깊숙히 있다는 것을 수술 후에야 알았다. 수술로 잘려나간 부분은 생각보다 컸고 잘라낸 뒤의 편안함도 생각보다 컸다.
2. 변을 본 후 깨끗하게 닦을 수 있게 됐다. 수술 전에는 아무리 닦는다고 해도 노란게 남아 있었는데 수술 후에는 대충 닦아도 팬티에 묻어나는게 없다.
3. 화장실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전에는 일을 다 본 후에도 한참을 앉아 있다 나오곤 했다. 하지만 수술 후 3분 이내로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도 있고 해서 얼른 나온다. 그래도 훨씬 더 개운하다.
4. 좌변기 사용이 편안해졌다. 전에는 항상 쪼그려 앉아야 변이 나와서 좌변기에서도 올라가 쪼그려 앉아 싸야 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에는 그냥 싸도 편안하게 나온다.

수술을 마치고
마치 자동차 타이어가 닳아서 새 타이어로 갈아낀 기분. 내 몸도 벌써 특별한 병 없이도 고장이 나서 일부 부속을 통째로 갈아 끼워야 하는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냥 청춘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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