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36대 회장에 경만호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당선됐다.
우선 축하할 일이지만 경 당선자가 앞으로 헤쳐나갈 일들이 만만치 않다. 이는 의료계가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과 그대로 맞물려 있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의협 회장을 가장 힘들게 할 일은 다름 아닌 의료계 내부 회원들 다독거리기다.
의사들은 지금 하나같이 패배주의에 빠져있다. 사방에 어느 곳 하나 내 편이 없고 모두들 살쾡이처럼 달려들어 의사를 물어뜯으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런 느낌은 안 그래도 의약분업 이후 잔뜩 웅크려 있는 의사들의 마음을 더욱 사리게 하고 있다.
이런 심리적 패배의식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계속되면서 내부적으로는 굉장한 동질감으로 작용했다. 그런 이유로 의협은 정부, 특히 복지부에서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고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마지막을로 의협이 힘을 모아 막아낸 것이 바로 의료법 전면개정안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된 몇 개의 안건들은 의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를 남겼다. 예를 들자면 약대 6년제, 포지티브리스트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복지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의료계의 마음에 쏙 드는 정책들을 추진하지 않는 데 있다.
의료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개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이 집권했는데도 아직 의료계의 의견들이 정부 정책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선 지난 1년 당연지정제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복지부는 꿈쩍도 안 하고 있다.
경만호 당선자는 이명박 정부 집권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부 내에 의료 관련 이런 저런 인사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인연이 은연 중에 의료계 내부에도 많이 알려졌고 이번 당선에도 경 후보가 집권당 또는 이명박 행정부와 인연을 통해 크고 작은 친 의료 정책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딜레마라는 점이다.
정부에 친 의료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친 정부 성향을 드러내야 하는데 과연 회원들이 이를 그대로 수용해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난 장동익 회장 시절에도 전격적으로 의료계와 정부간 긴밀한 관계가 시도되던 때가 있었다(의협 정치력 강화 기회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의사회원들은 감정적으로 정부와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집권당이 바뀌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마음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복지부와의 관계가 다 개선됐다고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경만호 당선자는 그 동안 의료 산업화 등과 관련, 상당히 급진한 개혁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복지부는 이에 대해 선뜻 대답이 없다. 또 건보공단에 대해서도 강력한 문제 제기에 나섰는데 정형근 이사장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조금 움찔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 당선자는 서울시의사회장 당시 유시민 장관이 있는 복지부와도 많은 물밑거래를 통해 회원들을 위한 실질적인 혜택을 얻어낸 사례가 있다. 경 당선자는 앞으로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 보다는 적극적인 정책 공조로 실리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가 꼭 의료계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해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경만호호의 성패는 이럴 때 의사회원들의 반발 목소리를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아무리 잘 하고도 민심이 돌아서면 일순간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의료계의 불협화음은 그대로 드러났다. 선거 방식상 최다득표를 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국 당선자를 찍지 않은 대다수의 유권자를 그대로 양산한 것도 사실이다. 한 표를 찍은 사람은 어쨌는 당선자의 성공을 빌겠지만 그렇지 않은 85%의 회원들은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 보겠어!'라는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의협회장의 성패가 의협의 성패이고 의료계 전반의 성패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할 때다. 내가 찍지 않았어도 제도에 따라 당선됐다면 일단 지지를 먼저 보내야 하는 이유다. 그 동안 의료계 발전과 단합이 더뎠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당선자도 이런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기 보다는 회원들의 단합에 먼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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