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친구의 퀴퀴한 자취방에 가면 언제나 김창완의 노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창완은 제게는 '아련함'입니다. 왠지 김창완 노래만 들으면 제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깁니다. 어쩌면 제 우울한 시기를 닽래 준 이에 대한 보답 같은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 우울한 시기조차도 이제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합니다.
그때 친구의 자취방은 제게는 일상의 탈출구였습니다.
제 고교시절은 돌아보면 끝없는 그리움이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 큰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가출 한 번 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더 우울했고 누구보다도 더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그 시절을 보내며 저는 '남들처럼 사춘기도 없이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돌이켜보면 누구보다도 혹독한 사춘기를 겪은 것 같습니다.
끝 없는 고독의 자취생활도 존재감 없는 학교 생활도 제게는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신감을 갖고 저를 펼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이 친구의 자취방이었습니다. 밤새 수다를 떨고 논쟁을 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친구의 자취방은 언제나 누런 이불이 깔려 있었고 먹다 남긴 안성탕면 국물이 담긴 동그란 밥상이 펴져 있었습니다. 제 자취방보다 좋은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친구의 자취방이 저는 좋았습니다.
그 자취방이 제 자취방보다 좋은 것은 단 하나 카세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라디오와 카세트가 같이 달려 있는 시커먼 그 카세트에서는 언제나 산울림 11집이 반복해서 흘러 나왔습니다.
그때 제게 김창완은 왠지 '낭만자'로 보였습니다. 사실은 너무 우울해 보이면서도 마음 속에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담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맑은 그의 목소리도 좋았고 우울한 그의 노래도 좋았습니다.
특히 우울한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도시에 비가 내리면'은 항상 그 친구의 자취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 연락이 끊긴 그 친구도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죠?
도시에 비가 내리면(산울림 11집)
http://www.changwan.com/album/doplay.php?mid=&midk=&tm=150
(노래)
도시에 비가 내리면 들려오네
바삐 오가는 우산 속에는
작은 얘기만 담을 수 있네
우산 속의 얘길 접어서
들창가에 널어 놓으면
언젠가 향기 되어 속삭일 텐데
도시에 비가 내리면 너무 추워
나의 가냘픈 노래도 젖어
가는 실로도 묶을 수 있네
비에 젖은 노랠 묶어서
들창가에 걸어 놓으면
언젠가 나비 되어 날아갈 텐데
(대사)
여: 취입 끝났어?
남: 응
여: 잘했어?
남: 응, 그냥
여: 사람들이 좋대?
남: 뭐?
여: 왜 웃어
남: 어디 갈까?
남: 볼륨 좀 줄여
여: 왜 그렇게 뚱한 표정이야.
끝나서 시원하지 않아?
남: 끝나?
여: 어디로 갈까?
남: 아무데나
김창완이 오밤중에 진행되는 본격 음악 프로그램 MBC '음악여행 라라라'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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