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9회말 짜릿한 역전승을 구경했습니다.
게임은 초반부터 끌려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네이버 중계가 자주 끊겨 볼만하지가 않아 애초 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핸드폰 DMB로 보던 아내가 갑자기 안방에서 부릅니다. 그리고 간략하게 지난 상황을 설명해 줬습니다. 9회초 두산이 잡은 승기를 안타깝게 놓쳤고 9회말 LG는 두산의 실책이 기회가 돼 주자가 진루한 상황이었습니다.
승부는 이때부터 방향을 고쳐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대형은 두 번이나 번트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어쩔 수 없이 시행한 강공에서 3루 땅볼을 쳤는데 또 실책, 순식간에 안타 하나 없이 주자 2, 3루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이어 나온 이병규의 삼진으로 김이 빠지는가 했는데 안치용의 볼넷에 이어 들어선 페타지니는 볼카운트 1-2에서 우중월 끝내기 만루홈런을 쏘아 올린 것입니다.
9회말 끝내기 역전 홈런 하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LG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이 되고 있는 02년 한국시리즈. 그때는 삼성과 맞붙었습니다.
요새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당시 LG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성적으로 겨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서 어려운 승부를 이어간 끝에 한국시리즈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이어간 6차전. 9회말 9-6 상황. 마운드에는 이미 일본과 메이저리그까지 접수하고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이 특유의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 축포를 머리 속에 떠 올리기에 충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터진 이승엽의 동점 스리런 홈런. 일순간 온 몸이 부르르 떨리며 짜릿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터진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 승부는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삼성은 처음 한국시리즈를 제패했고 LG에게는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됐습니다. 아마도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로 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장면이고 저로서는 지금도 마치 가위 눌린듯이 떠올리는 상황입니다.
그 후 이승엽은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꼭 한 방을 해주는 선수가 됐고 LG로 넘어온 마해영은 LG에 와서도 또 LG를 엿먹이는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오늘 페타지니의 역전 만루홈런은 근래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LG의 근성을 보는 듯한 장면이었고 올해는 좀 기대를 해도 되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어쩌면 시즌 초반 그저 한 게임에서 이겼을 뿐인데 물 뿌리고 난리 치는 모습이 오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 저로서는 그때 맺혔던 꼬인 운명을 이제서야 푸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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