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

한겨레21이 6월 12일자 최근호에서 계간 <문화과학> 2009년 여름호를 인용, 이명박 정권은 파시즘 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파시즘X의 탄생 [2009.06.12 제764호]

파시즘 X 란 당장 파시스트 정권은 아니지만 앞으로 충분히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과거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즘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면서도 현 정부가 '파시즘 X'로 변할 여러 요소가 현저히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문화과학>은 학술지입니다. 30명의 학자들이 자문위원 및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만듭니다.

한겨레 21에 따르면 <문화과학>은 최근오 편집위원회 공동 명의의 글에서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 엑스’로 돌변할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학자들이 집단적으로 ‘파시즘’의 개념을 빌려 현 정부를 공식 호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30명의 학자들, "현 정국, 파시즘으로 변할 가능성 있다"

학계에선 파시즘을 함부로 규정하는 것을 꺼립니다. 우파 세력을 모욕주려고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면, 진짜 파시즘의 등장을 흘려버리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시즘 X는 현 정부의 파시즘적인 요소를 드러내면서도 과거의 파시즘과는 구별을 함으로써 현 정국에 대한 경고와 함께 악화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둔 것 같습니다.

» 지난 5월3일, 서울대 인문대 강의실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도중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단상을 막아섰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우선 한국 경제가 올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으로 침체할 경우, 또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돼 먹고사는 문제에만 급급할 경우, 그리고 우파가 억압·통제를 통해 이런 상황을 돌파할 경우,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 해체기의 ‘파시즘 엑스’가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경제 문제 급급, 탈정치화가 파시즘 엑스 초래

파시즘은 광범위한 ‘파시스트 대중운동’을 동반합니다. 이에 대해 <문화과학>은 △장기 침체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6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 △1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 및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자이면서도 소비자본주의에 익숙한 20대 등이 우익 사회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지지율 30%를 떠받치는 견고한 보수층(우익 개신교·50대 이상 노년층·영남)이 중핵이 되고, 뉴라이트 단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겨레21은 이와 관련, 지난 3월 국민행동본부 산하 ‘애국기동대’의 출범은 작지만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해병대·특전사 출신 90여명으로 이뤄진 애국기동대는 출범 선언에서 "반헌법적 좌익 폭도들과 싸운다" "좌익들의 패륜적 테러에 대해 정당방위적 자위권을 행사한다"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종북 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등을 '맹세'했습니다. 선언문만 보자면, 극우 돌격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출범식 직후에는 무술 시범도 보였습니다.

600만 자영업자, 뉴라이트 단체가 파시스트 대중운동의 기반

파시즘은 강력한 국가 통제를 특징으로 합니다. <문화과학>은 'MB 악법'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정원법 개정(국내정보 수집권한 확대·국가비밀 범위 확대), 집회·시위법 개정(마스크 착용 금지), 신문·방송법 개정(신방 겸영 허용·대기업 지상파 지분 확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감청 권한 강화) 등은 개인의 자유와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면 표현의 자유의 모든 영역을 ‘합법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최근 북핵 위기로 인한 남북 대결 국면은 ‘외부의 적’을 동원하는 공포정치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과학> 발행인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히틀러의 나치즘은 정권을 먼저 장악하고 나중에 우익 대중운동을 일으켰다”며 “이명박 정부의 집권 기간에도 ‘국면’에 대한 판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 엑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21은 "이명박 정부는 정말 ‘파시즘 엑스’ 정권으로 향하는 외길에 오른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성향이 조금씩 다른 정치학자들은 그런 규정이 아직은 이르다고 답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파시즘적 경향'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학자들, 파쇼화의 진행에는 모두 공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현 정권이 정말 파시스트 정권이라면 모든 세력이 연합해 이를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강하게 규정하면 좌파 세력 내부의 건강한 ‘차이’가 사라지고 일종의 ‘반파시스트 전선’만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다만 “민주주의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대중을 동원해 반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권력이 판단한다면, 이를 ‘유사 파시즘’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공공행정학)도 “권위주의를 오랫동안 경험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을 염두에 둔다면, 노골적인 파시즘이 한국에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억압은 “전체주의건 권위주의건 파시즘이건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로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파시즘 대신 ‘신자유주의 공안국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집회·사상·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고, 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도 과거처럼 ‘정권의 하수인’이 됐는 것입니다. 그는 “파시즘이라고 규정짓는 일보다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파쇼화’를 우려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다.

한겨레21은 이런 상황과 관련,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레커먼은 ‘프렌들리 파시스트’(friendly fascist)라는 표현을 소개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선한 얼굴로’ 정치적 반동을 재촉했다는 것입니다. ‘파시즘 프렌들리’의 맥을 잇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파시즘 이행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부시 정권이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복면을 쓰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는다. 지난해 10월3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소속 청소년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그는 '파시즘 이행기’를 판별할 몇 가지 잣대를 제시했는데, 이명박 정부 시기의 한국 시민들에게도 유용할 것입니다.

△집회·시위에 나서거나 비판적 발언을 하면 신체적 위협을 가한다. 시민들의 무차별 체포와 투옥을 꺼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준군사조직’이 등장한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도청을 합법화하고 개인의 전과와 정치 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 자료를 활용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겨냥해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시민단체에 첩자를 심어 조직을 파괴하거나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으로 괴롭힌다.

△비판적 검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인격모독을 포함한 고문, 근거 없는 고발,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마구잡이 기소 등의 사법독재가 등장한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언론인을 모독하거나 수치심을 주고, 해당 언론의 책임자들이 언론인을 해고하게 만든다.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범죄로 만들기 위해 불법행위의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새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안팎의 위협을 부각시킨다.


나오미 울프는 파시즘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습다.

한겨레21은 "그가 제시한 ‘파시즘 이행기’의 잣대는 어쩐지 낯익다"고 꼬집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이 지난 2009년 6월, 한국의 시민들은 파국의 징후를 날마다 발견한다며 경찰·검찰·언론 등에서 일어나는 그 징후를 돋보기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파시즘 엑스’가 정말 온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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