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남부지역 1박 2일


올해도 봄을 맞아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몇년째 2월이면 가족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세종시에서 시작해 논산, 부여, 청양을 둘러 보았고 지지난해에는 군산, 채석강, 정읍, 김제 등을  구경했습니다.

올해에는 홍천에서부터 시작해 평창, 오대산, 정선, 동해, 삼척, 태백 등을 돌아보았습니다.



이효석 생가


평창군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생가 터에는 자그마한 기와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효석이 태어나 살았던 생가는 이미 다른 주민에게 팔렸고 이 터를 산 새 주인은 기존의 초가집을 허물고 새로 기와집을 지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월정사에 들렀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연한 조급함에 그 유명한 전나무 숲길은 걸어보지도 못했습니다.

8각9층탑은 그 구조적 아름다움이 역시 소문대로였습니다. 

팔각 기단 위에 감실을 두로 9층을 올렸는데 처마에는 아직도 풍경이 달려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또 새로 올린 것인지 애초 그대로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탑들이 상륜부가 유실된 데 비해 월정사탑은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누가 보기에도 새로 만들어 세운 탑 앞의 기도하는 보살상은 영 생뚱맞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절집 대부분은 한국전쟁에 불타고 그 이후 지어진 것이라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규모나 양식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본당이 적광전이었는데 본존은 석가모니불을 모신게 특이했습니다. 적광전은 주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주로 대적광전이라고 이름하는데) 석가모니불은 주로 대웅전이라 이름하여 모시는데 어정쩡하게 섞어놓은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로 상원사로 올라갔습니다.

상원사는 월정사보다도 더 대단한 것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중학교 시절 배운 수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떠올라 지는 해를 뚫고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수필에 따르면 방한암 선사의 숭고한 죽음으로 6. 25의 재난 속에서도 우리의 고찰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7km정도의 길은 비포장도로였고 아직 군데군데 길은 얼고 눈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간 고찰은 까마득 높은 계단이 곡선을 그리며 이어져 지친 나를 더욱 아득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기대하고 올라간 절은 월정사보다도 더 볼 것은 없었고 타지 않아 남아 있었다는 건물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려가는 길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먹은 황태구이정식은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20여가지 나물로 구성된 밥상은 어느 것 하나 맛이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물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한 맛과 향을 가졌는데 대부분 나물로만 구성돼 있어도 12000원 가격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나물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 이름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배불리 먹고도 오히려 남은 주메뉴 황태구이는 차라리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미 해가 깊어 진부 면내에 머문 오투모텔은 4인가족 5만원에 따뜻한 온돌이었습니다.

TV, 와이파이, 컴퓨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진부면에서 아우라지까지

59번 국도를 따라 정선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대천 변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따스하게 내리째는 봄 햇살아래 많지 않은 강물이 반짝였습니다. 산에서는 눈녹은 물이 적지않게 흘러내렸습니다. 

강 따라 흐르는 길은 큰 고개를 넘지 않아 평온했고 큰 차들도 지나지 않아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길 곳곳에 공사를 알리는 표시들이 세워져 있어 언젠가 다음 이곳을 찾을 때에는 이런 평온함을 느낄 수는 없겠구나하고 서러웠습니다.

정선에 거의 이르러서 동해로 난 42번 국도로 갈아탔습니다. 이번에는 골지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였습니다.

아우라지역은 이미 관광지로 개발돼 잘 정돈돼 있었습니다.

역 앞에서 먹은 콧등치기 국수는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과하지 않은 맛으로 별미삼아 먹기에 충분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 레일바이크를 탈려고 했지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출발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패스


아우라지에서 삼척까지

아우라지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코스는 큰 고개를 몇개나 넘어야 하는 험한 코스였습니다. 긴 오르막길 끝에 고개를 넘으면 짧은 내리막이 몇번 반복되고 마지막 800미터가 넘는 백복령을 넘고 난 뒤에는 끝없이 꼬불꼬불한 급경사 내리막길이 20km 넘게 이어졌습니다.  

대관령이나 미시령, 한계령을 넘을 때처럼 재 정상에 펼쳐지는 동해의 장관은 없었습니다. 


추암 촛대바위

일출로 유명한 추암은 한 15년 전 대학교 졸업여행에서 다녀온 적이 있는 곳입니다. 

 입구까지 이어진 엄청 넓은 대로는 아마도 동해 항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정작 추암 입구에 이르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추암역 밑으로 이어진 굴다리길은 정말 이곳이 그 유명한 해돋이 명소로 이어지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추암의 모습은 15년 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마을 집들은 절반 이상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는 주차장이 많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야트막한 산에는 조각공원이 들어서 조금의 볼거리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 언덕에는 으리으리한 무슨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생뚱맞은 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도, 갈매기도 촛대바위도 군 초소도 철조망도 그대로였습니다. 아직도 그 철조망으로 간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서루

삼척 시내에 있는 죽서루에 들렀습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이 떠올라 인터넷을 찾아보았습니다.

眞진珠쥬館관 竹듁西셔樓루 五오十십川쳔 나린 믈이 太태白백山산 그림재를 東동海해로 다마 가니, 찰하리 漢한江강의 木목覓멱의 다히고져. 王왕程뎡이 有유限한하고 風풍景경이 못 슬믜니,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객愁수도 둘 듸 업다. 仙션사랄 띄워 내여 斗두牛우로 向향하살가, 仙션人인을 차자려 丹단穴혈의 머므살가.
< 현대어 풀이>진주관[삼척]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내리는 물이 (그 물에 비친)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옮겨)가니, 차라리 그 물줄기를 임금 계신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볼수록 싫증나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고,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 길 없구나. 신선이 타는 뗏목을 띄워 내어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무를까?


맹방해수욕장

맹방해수욕장의 시원함은 동해 최고의 절경이라고 할만 했습니다.

상맹방, 하맹방, 덕산으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은 6km에 이렀습니다. 더욱이 이 넓은 해수욕장이 곧게 이어져 한 눈에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막힐 곳 없는 이 곳의 바람은 다른 지역의 두배는 넘게 거세게 이는 듯했습니다.

문득 서울에서 바람이 없어 날리지 못하고 차에 넣어뒀던 가오리연이 생각나 꺼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바람은 연을 날리기에 너무 강했습니다. 꼬리의 무게를 더해 균형잡기를 시도했지만 종이가 버티지를 못하고 찢어져버렸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연실을 감다가 옆에 있는 전신줄에  휘리릭 감기는 바람에 추억은 현장에 두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임원항 회센터

역시 동해 여행의 백미는 싱싱한 회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겨울이어서인지, 비수기여서인지, 주중이어서인지 대부분의 횟집들은 썰렁해 보였습니다. 아내는 썰렁한 횟집의 생선들은 수족관에 오래 머물러서 맛이 없다며 유명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임원항입니다.

임원항에는 부두 옆으로 조그마한 횟집들이 길게 줄지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활기는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도다리, 광어, 가자미 등 납작한 생선 시리즈로 주문했습니다. 회는 포를 뜨지 않고 듬직듬직 썰어진 채 접시에 무채도 깔지 않도 두둑히 나왔습니다.

밑반찬도 하나 없이 다만 채소와 고추장, 겨자 간장이 나올 뿐이고 다만 회무침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야채와 미싯가루를 넣어서 한 그릇이 나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가격 대비 양도 많았고 맛도 좋았습니다.


임원항에서 서울까지

회로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나왔을 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애초 1박을 더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할 계획이었지만 조금 무리해서라도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강릉으로 올라가 고속도로를 타는 것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지방도로를 타고 태백까지 갔습니다.

태백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태백시는 영동에 있는 도시가 맞습니다. 태백에서 시작하는 낙동강이 남해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영남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백을 넘어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에 가까울 정도로 편도 2차선에 중앙분리대까지 완벽하게 돼 있었고 교차로나 신호등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내리막길이 이어져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에서는 속도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두문동터널에서 영월 읍내까지 60km정도가 한번도 쉼 없이 내리막길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영월 읍내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가진 후 제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애초 태백이나 영월에서 1박을 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1박을 덜 하는 바람에 조금 빡센 일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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