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칼럼] 외교마저 YS를 닮고 싶은가

[성한용칼럼] 외교마저 YS를 닮고 싶은가
한겨레 성한용 기자
‘설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가 “그 친구 순 ‘꼴통’이다. 실용주의라고? 속지 말라”고 말했을 때였다. 1년 전의 일이다. 믿기가 어려웠다. 이회창이나 박근혜라면 몰라도 이명박을 ‘수구 꼴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대북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승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착각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이라는 ‘조건’을 들고 나왔다. 북한의 자존심을 짓밟고, 우리 정부 스스로 선택지를 좁힌 것이다.

“우리가 밀린다는 지적이 있지만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와 상황이 있다. 북한을 잘 관리하고 있다. 자신이 있다.”(11월1일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겁이 덜컥 난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 실제 상황이 종종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북한을 통과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 사업에 대해, “북한은 엄청난 통과비를 받아 외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 가스로 발전을 하게 되면 북한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도 환영할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옳은 얘기다. 그런데 옳은 얘기는 조심해서 해야 한다. 북한은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나라다. 돈을 줄테니 자존심을 팔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욕이다. 성질 사납고 못사는 형제와 잘 지내려면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우선 형제로 대접해 줘야 한다. 그래야 집안이 평안하다. 햇볕정책의 요체도 바로 그런 원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0월18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외교안보 정책조정회의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강경하게 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인식은 미국 네오콘과 비슷한 것 같다. 부시 정부의 대화론조차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물며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악몽은 반복되는 것일까? 199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인모 노인을 북송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TP) 탈퇴를 선언하자, 뒤통수를 맞았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이유로 대북 강경노선으로 돌아섰다.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핵 연계 전략을 고집했다.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와 같아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붕괴 임박론을 믿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자 김영삼 정부는 ‘몽니’를 부렸다. 1994년 7월 국가안전기획부를 시켜서 탈북자 강명도·조명철씨가 “북한은 1993년까지 핵폭탄 5개를 이미 만들었으며, 최소한 10개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폭로 기자회견을 하도록 시킨 일도 있었다. 제네바 합의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국무부 관리들의 입에서는 ‘북한보다 남한과 대화하기가 더 어렵다’는 푸념이 나왔다. 북-미 관계는 풀렸지만, 우리나라는 철저히 고립됐다. 돈만 대는 ‘봉’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닮고 싶은 것일까? 두 사람의 맹목적인 대북 강경론은 철학의 부재,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잘 모르면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외교·통일·국방 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 경제는 일시적으로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 있지만, 외교는 한순간 실수로 나라가 망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자칫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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