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 패전 처리, 결국 패전만 조장








며칠 전 어버이날, SK와 히어로즈의 야구경기를 TV 중계를 통해 지켜 봤습니다. 경기 결과는 연장 12회 무승부. 결과적으로 양팀 모두 패배를 안았습니다.

올해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예년에 비해 바뀐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무승부 규정입니다. 과거에는 보통 무승부를 절반의 승부로 기록해 왔는데 지난해에는 끝장 승부로 무승부 자체가 없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킨다는 이유로 올해부터 12회 셧다운을 도입하면서 무승부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무승부를 패로 처리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무승부 줄이기 위해 패전으로 처리

그런데 이날, 결국 무승부로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가운데 진행되는 연장전을 보면서 '무승부를 패전으로 처리하면 무승부가 줄어든다'는 명제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의문의 시작은 투수 운영에서 비롯됐습니다.

연장전이 시작되기 이전 이미 양팀은 전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물론 비기기보다는 어쨌든 한 점을 더 내서 이기고 싶었겠지만 결국 연장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장전이 시작됐을 때 과연 어떤 투수를 투입하는 것이 옳은 판단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투수 기용에는 승부에 대한 감독의 판단이 개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좋은 투수를 기용하면 패배는 안하겠지만 승리를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투수가 아주 잘 던져서 12회까지 0점으로 막을 수는 있지만 타자가 점수를 뽑아주지 않는 한 그것이 그대로 승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물론 타자들이 점수를 잘 내주면 다행이지만 자칫 투수가 1점만 먼저 내 주는 날엔 그대로 패전입니다. 선발투수처럼 조절해가면서 던질 수가 없습니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 5km를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내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는 친구를 쫓아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미리 나쁜 투수른 내보낸다면,
가장 쉽습니다. 동점이 돼도 패배인데 얼른 지고 일찍 들어가서 쉬면 차라리 내일 경기에라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나쁜 투수가 괴력을 발휘해 잘 막아내고 타자들은 공격을 잘 해 1점이라도 뽑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을 포기했다는 비난입니다. 언론과 관객 모두 가만히 있지 않은 것입니다. 동점에서 패전처리를 하는데 감독인들 기분이 좋겠습니까.

좋은 투수가 승리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럼 결국은 그렇고 그런 투수를 내보내 잘 해서 이기면 좋고 지면 할 수 없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먼저 공격을 하는 팀(원정팀)이 먼저 1점이라도 뽑을 경우, 그 땐 타자들 조차도 헛심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한 이닝에 두 점을 뽑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상대편은 최고의 투수로 악착같이 막으려고 들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한 점을 뽑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동점이면 어차피 패전인데 뭐하러 그런 힘은 쓰겠습니까.

결국 무승부를 하지 말라고 만들 제도가 '얼른 져'라고 만든 제도가 돼 버렸습니다.

무승부 막으려다 패배만 조장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매일 숙제를 내 줍니다. A4용지 두 장 분량을 외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내서 단 1초 이내에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면 그대로 'OUT!' 그리고 허벅지를 한 대씩 맞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문제 맞추기를 계속 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만 'Sit Down!'. 80%의 학생들은 그대로 'OUT!'.

물론 처음에는 열심히 해 보았지만 나중에는 그냥 맞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제 영어 울렁증은 그때 시작됐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영어도 다른 과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거든요. 하지만 그 때부터는 포기가 쉽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차피 맞을 것 그냥 맞자

모든 제도는 생각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항상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행 도중에도 역효과를 내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누구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는 없다'며 애초에 소통을 막아버리면 결국 이 나라에는 대운하가 뚫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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