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로 타고 영월 드라이브





영월은 인구 4만도 채 되지 않는 산골입니다.

과거에는 여러 탄광산업의 발전으로 나름 북적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별볼일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나 인구 규모에 비하면 전 국민에게 비교적 이름이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영화 라디오스타의 흥행과(이마저도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드라이브 삼아 영월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한 정도의 적당한 고속도로 거리와 나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와인딩 코스를 기대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한반도지형 전망대였습니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신림나들목에서 내려 30Km정도를 달리는 길입니다. 길은 왕복 2차선 시골길로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 경관을 구경하며 가기 좋은 길입니다. 높낮이가 심하거나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작은 시골 면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짧은 터널도 있습니다. 꾸불꾸불 이어진 강을 따라 넓지 않은 논들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한반도 지형은 방송에서 볼 때 보다 오히려 더 한반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쪽의 높은 산맥과 서쪽의 넓은 평야지대를 닮은 것이 그렇습니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왕복 2Km정도의 산책길도 여러 특이한 형태의 지리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반도 지형 북쪽 그러니까 실재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면 아마도 중국 요동반도 쯤 위치에 시멘트 공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 굴뚝에서 허연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이 저절로 눈살을 찌뿌리게 했습니다.

다음은 삼촌에게 왕좌를 빼앗긴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종 유배지, 청렴포를 향했습니다.

영월에서의 길들은 강원도 산골짜기라는 이미지와 달리 대부분 작은 강을 끼고 있어서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만난 38번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청렴포는 영월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현장에 갔지만 정작 유배지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야 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강 건너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강 건너에서 보기에도 세조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단종 유배지로 정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곳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고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있어 혼자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천혜의 감옥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불안했던지 결국 어린 조카를 죽여버리는 그 독한 마음은 아마도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만 공감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음 코스도 은둔의 대명사 김삿갓 문학관입니다.

김삿갓은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한 할아버지에 대한 연좌로 멸족을 당할 뻔 했으나 이를 겨우 피하고 살아난 시대의 천재입니다.

그의 문학성은 이미 어린 시절 발휘됐지만 어차피 출세가 막힌 김삿갓은 평생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며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김니다.

김삿갓의 시는 지금 유행하는 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음악성이 그렇고 그 풍자와 해학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성적 유희와 언어적 농락의 수준이 19금을 넘나드는 것이 더욱 그렇습니다.

김삿갓문학관은 영월에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길 중간에 있었습니다.

나름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금 험한 와인딩코스를 기대했지만 이 또한 허당이었습니다. 문학관으로 가는 길 역시 대부분 강을 따라 이어져 있어서 고도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꼬불꼬불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와 달리 강 옆이 거의 수직 절벽으로 이어진 곳들이 많아 경치는 더욱 절경이었습니다.

김삿갓문학관을 지나 경상북도 부석면으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구간 초반은 고원지대 산마루길을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평지에 비해 고도는 많이 높지만 평평한 산허리를 완만하게 따라 가는 구간이 계속됐습니다. 읍내에 비해 온도도 많이 낮아져 길가에는 눈이 녹지 않고 수북이 쌓여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햇살은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니 행정구역도 경상북도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산맥을 넘어가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소백산맥 한 허리를 그렇게 이웃마을 가듯이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버스진입금지”라고 쓰여져 있는  작은 바리케이트가 길 한쪽에 서 있고 이를 피해 살짝 접어드니 갑자기 길은 외차선 도로로 바뀝니다. 그리고 경사도가 급해지고 사방이 온통 눈인데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길만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봄길이 겨울길로 바뀌는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간은 와인딩이라기보다는 거의 거북이 걸음 수준으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엉금거려야 했습니다.

뒤에서 다가온 프로미 긴급출동차를 겨우 피해 보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차조차 지나가지 않았다면 귀신에 홀렸다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가니 마구령이라는 바위가 서 있었습니다. GPS상에 고도 830m로 나타났습니다.


미끄러운 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걱정입니다. 채 시속 10km도 내지 못하고 엉금거리니 하이브리드 배터리가 충전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제대로 충전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속도를 내야 하는가봅니다.

그래도 다행히 남쪽면이라 볕이 많았습니다. 정상 부근에서 조금 내려가니 눈에 띠게 눈이 녹았습니다. 그제서야 긴 한숨을 쉬니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있습니다.

그제서야 문득 생각할수록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도, 시, 군 경계가 높은 산 정상과 능선을 따라 이루어 지는데 경북은 소백산맥 능선 너머에 까지 있는 것입니다. 산맥 너머 아주 작은 마을도 주소상으로는 경상북도인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어디로 시장을 보러 다닐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와인딩은 하지 못한 꼴이 됐습니다. 그래도 경치를 제대로 즐겼고 은둔의 이야기도 제대로 공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삿갓의 시 한 수 붙입니다.

天脫冠而得一點 천관탈이득일점
乃失杖而橫一帶 내실장이횡일대

하늘천자에서 뚜껑 빼고 점하나 찍고 (犬)
이에내자에서 작대기 빼고 가로선 하나 긋고(子)


말하자면 개자식이란 소린데. ㅋ ㅋ

상대를 아주 점잖게 모욕주는 방법인가 봅니다...
아주 절묘하게 라임이 딱딱 맞습니다.

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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