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물리치료 보험 급여화에 의료계 술렁 의협 안이한 대처 질타, 건정심 결정 되돌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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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물리치료 보험 급여화에 의료계 술렁 의협 안이한 대처 질타, 건정심 결정 되돌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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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 서울서부지법,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 제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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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근 교수 수술법, 심평원 판단 결국 유예 안정성, 유효성 검증 여부 아직도 논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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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문위원, 사회보험 징수통합 오히려 비효율 가능성 이혜훈 의원 건보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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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경제난, 건강보험료 동결 암 본인부담금 줄이고 3차 병원 외래 진료비는 늘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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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학회 조건현 이사장, "심장 수술은 장기 성적이 중요" 학회 홈페이지 통해 심경 밝혀, 동영상 유포 유감 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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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캔】“심장 수술은 중장기 성적이 중요하다. 적어도 3년 이상 경과 후 토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흉부외과학회 조건현 이사장이 최근 송명근 교수 수술법 논란과 관련, 학회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자신의 심경과 심평원 논의 과정을 해명했다. 조 이사장은 CARVAR 수술법이 새로운 수술법으로 인정되면 많은 후학들이 이 수술을 시도할 텐데 심장판막수술의 특성상 수술 직후 도 중요하지만 중장기 성적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따 라서 수술의 새로운 기법도 좋은 내용이지만 차후에 판막의 변성이나 석회와 관상동맥 문제 등과 같은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고려하면 수술 후 적어도 3년 이상 경과 후에 추적 연구 자료가 학회나 학회지에 발표되고 좋은 결과가 검증된 후에 토의되고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조 이사장은 또 송 교수의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심평원 논의 과정을 대해 소개했다. 조 이사장은 심평원에서 수술법에 대한 질의가 왔을 때에 학회는 10명의 상임이사와 7명의 대동맥판막수술과 관련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과 상의한 후에 문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에 참여한 회원들 중에는 송교수의 수술을 시행하여 본 사람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또 추계학술대회에서 진행된 토론내용이 담긴 동영상 촬영, 유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조 이사장은 최근 유포되고 있는 동영상은 학회 이사장인 자신이나 회장 또는 추계학술대회를 주관한 학술위원장에게 동의를 전혀 받지 않은 상태로 촬영된 것이라며 이렇게 쵤영된 동영상이 회원들 간의 학문교류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외국학회에서는 학문의 발전과 교육을 위하여 학회 토의의 전 과정을 CD에 수록하여 배포하거나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흉부외과 학회에서는 아직 그런 과정이 없다며 다만 학회회원들이 미처 참석하지 못한 동료나 회원을 위해서나 또는 전공의 교육을 위하여 학회발표 및 토의과정을 녹화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는 언제나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
[ 한글 역사 ] 1443년에 세종이 손수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정인지·박팽년·신숙주·성삼문·최항 등 집현전 학자 8명이 해설 붙이고 본보기 설명 조선 말기에 주시경이 한글 연구·교육 및 계몽활동 펼쳐… 1933년에 맞춤법 원리 확정돼 | |||
조 선의 넷째 임금 세종(世宗·1397 ~1450)은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기를 즐기는 ‘학문의 사람’이었다. 왕실에서 나서 자랐어도 대궐 밖에 사는 백성의 어려움을 잘 알고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사람’이었으며, 음률에 민감해서 악기를 교정하고 새로운 악보를 창안할 만큼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재능의 사람’이었다. 특히 언어학 분야의 지식은 당대의 어느 사람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고 치밀했다. 그 모든 지식과 창의적인 재능과 겨레 사랑을 한데 쏟아부어 이룩한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라는 인류문화사의 꽃이다. 이 런 놀라운 글자를 어찌 한 사람, 그것도 나랏일에 분주한 임금이 만들 수 있었으랴 하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집현전의 젊은 선비들과 더불어 만들었거나 아니면 신하들이 만든 것을 임금이 한 것처럼 꾸몄을 것이라 하기도 하나 ‘훈민정음(訓民正音)’이나 ‘세종실록’ 등에 “1443년 겨울에 세종이 손수 만들었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고 위대한 착상을 두 사람 이상의 집단이 해낸 사례가 거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세종 한 사람의 발명임이 확실하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과정을 확실하게 밝힌 것은 1446년 가을에 펴낸 ‘훈민정음’밖에 없다. 이 책 앞머리에서 세종 자신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동기와 목적을 밝히는 머리말을 쓰고, 스물여덟 낱자와 여섯 겹자의 소릿값이며 받침 쓰는 법, 초·중·종성을 모아 적는 법, 소릿점 찍는 법 등 요긴한 내용만을 7쪽에 걸쳐 아주 간명하게 설명했다. 그 다음 58쪽에 걸쳐 정인지(鄭麟趾·1396~1478), 최항(崔恒·1409~1474), 박팽년(朴彭年·1417~1456), 신숙주(申叔舟·1417~1475), 성삼문(成三問·1418 ~1456), 강희안(姜希顔·1417~1456), 이개(李塏·1417~1475), 이현로(李賢老·? ~1453) 등 여덟 사람이 임금의 명령을 받아 공동으로 자세한 해설 곧 글자 만들기, 초성과 중성 및 종성의 풀이, 모아쓰기, 실제의 본보기를 설명하고 꼬리말을 붙였다. 이 밖에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무슨 책을 읽으며 연구나 조사를 했는지는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중국의 요동으로 중국인 학자 황찬(黃瓚)을 몇 차례 찾아가 음운학을 배워 왔다는 사실은 1445년의 일인 만큼 1443년에 완성된 훈민정음 창제와는 무관하다. 당대의 한자음을 표준화하기 위해 1448년에 펴낸 ‘동국정운(東國正韻)’과 세종이 떠난 지 5년이 되는 1455년에 펴낸 ‘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을 짓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얻으려고 찾아간 것이다. 세종은 아들 문종(文宗)도 거들게 했고 딸 정의(貞懿) 공주도 관여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한자나 중국어의 운학을 세종 스스로 깊이 연구한 것이 훈민정음을 만드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세종은 앞서 음률에 정통한 것처럼 한자 운학을 통해서 음운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당대 한국어의 음운체계를 연구할 수 있는 굉장한 언어학자가 되어 있었다. 세종이 새 글자를 반대하는 신하에게 “너희가 언어학을 얼마나 아느냐?”고 한 것은 결코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이들의 상소문 가운데 몽골,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이 한자와 다른 글자를 쓴다는 언급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웃한 나라나 민족의 여러 언어와 문자에 대한 지식도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
▲ 훈민정음의 글자 뜻과 사용법을 풀이한 훈민정음 해례본. |
▲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한글 조형물. |
▲ 국립극장 앞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행사에서 학생들이 훈미정음 탁본을 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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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공의 없이 스태프, 전임의, 인턴만으로 구성된 세계 수준의 대장암 전문 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16년여간 근무해 오던 원자력병원을 떠나 새로 건국대병원에 자리 잡은 황대용 교수는 13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병원을 옮기면서 약속받은 것은 다름 아닌 센터의 인력 구성과 관련된 권한”이라며 “우선 스태프 2명, 펠로우 1~2명과 인턴으로 인력을 구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무엇보다 성공적인 센터 운영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인력 구성이 중요하다며 전공의가 환자의 케어를 맡는다면 일정 수준의 질을 확보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전공의가 바뀌게 되면 환자들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며 전공의 없는 인력 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어 전임의가 지금 전공의가 맡고 있는, 환자를 직접 관리하는 역할과 당직 역할까지도 맡아서 하도록 함으로써 환자들이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대장암 환자는 늘고 있는 추세라 내부 직원의 마음만 얻어도 밤잠이 모자랄 정도로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며 8000여명의 교직원뿐만 아니라 동문까지 풍부한 내부 고객을 갖고 있어 환자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어 진료와 (환자에 대한)교육, 예방 사업을 체계적으로 갖춰 추진한다면 선후배와 명망 있는 의사들이 모여들 것이라며 앞으로 30여명의 스태프가 갖춰진다면 세계 최고의 센터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황 교수는 “대장암을 다루는 내과 의사는 그야말로 ‘언틸 데쓰(죽을 때까지)’ 환자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흔치 않은 분야”라며 “이런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남 다른 능력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